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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부인과 Push! Push!>
<산부인과>를 통해서 본 박철수,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이 글은 1997년 7월, 웹진영화 창간호의 ISSUE FILM 섹션에 위와 동일한 제목으로 실었던 것이다. 원래 글 후반부에 의료 사회학과 의사학(醫史學)의 연구 성과를 도입하여, 제도로서의 병원/산부인과에 대한 박철수 감독의 철저한 몰이해와 무지를 자세히 지적해 줄 계획이었으나 원고 마감 시간에 쫓겨 결국 포기한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이 미완의 글을 읽어 보니 그 나름대로 완결된 논리를 갖추고 있어 이 상태로 마무리한 게 차라리 잘 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 <산부인과>는 심각한 학술적 논의가 요구될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0/07/19.

박철수 감독(이하 박철수)의 <산부인과>는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 부담 없이 보고 웃을 수 있는 한 편의 소품에 해당합니다. 출산으로부터 비롯되는 이런저런 무거운 소재들이 박철수 본인의 언급처럼 흥미 본위의 가벼운 가십거리로 탈바꿈하여 나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씨네21>, 제90호, 23쪽]. 이 가벼운 웃음에 더하여 만약 관객이, 감독이 던져 주는 "세상이 깨끗해지려면 여성의 자궁이 깨끗해져야 한다"[<씨네21>, 제90호, 27쪽]라는 계몽성 농후한 메시지마저 감지하게 된다면 이 영화 <산부인과>는 그야말로 영화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임무를 달성한 영화로 남게 되겠지요. 재미도 주겠다, 교훈도 주겠다, 뭘 더 바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산부인과>는 적절한 의학 자문을 구한 탓인지 실제로 산부인과에서 벌어질 만한 일들이 그런 대로 사실에 가깝게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실에 근접한 이러한 영화적 모사(模寫)가 감독의 철 지난 시도-계몽 캠페인(?)에 한층 무게를 실어주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박철수는 여전히 계몽을 미완의 프로젝트로 보고 있는 이 시대의 얼마 남지 않은 모더니스트일까요? 만약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박철수는 얼마나 비장한 심정으로 이 영화를 찍었을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산부인과>에 대한 호의와 칭찬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산부인과>가 그나마 간직하고 있던 이런저런 미덕들은 박철수가 영화 전문지 <키노>와 가진 인터뷰[1997년 6월호, 212-215쪽]에서 행한 다음의 어처구니없는 발언들로 인해 그만 흉한 모습으로 뒤바뀌어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기자 : 산부인과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다시 말해 산부인과라는 의학적 제도 자체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박철수 : 산부인과의 상징성? 산부인과는 단지 남을 도와주는 것이다. 산부인과가 없어도 충분히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현대적 방법으로 도와주기 위해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단순했던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도 이제는 굉장히 복잡해졌다. 부인병도 발달하고. 그런 물리적인 것말고는 산부인과 하면 여성성에 가장 가까이 있는 하나의 터라고 할 수 있겠다.

기자 : 자신의 몸을 제도화하는 어떤 장치로서 산부인과를 물어본 것인데요?

박철수 : 산부인과를 어떤 제도라고 보고 싶지는 않은데… 산부인과의 존재 의미는 가장 원초적인 것이란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기본적인 것이지 어떤 제도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불쌍한 박철수. 어쩌자고 이런 순진한 답변을 했단 말입니까? 박철수의 이 답변은 사실상 그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냥 한번 만들어 본 겁니다"라고 답변한 것이나 다름없는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답변입니다. 그러니까 이 답변은 박철수가 자기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산부인과-병원이라는 공간에 대해 어떠한 진지한 고찰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찍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여 주는 지극히 문제성 있는 발언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박철수가 흥행이나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드는 흥행 감독이라면 이 발언은 그리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겠지요. 그러나 박철수는 1995년작 <301·302> 이후 국내 평론가들로부터 소위 자의식을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우리의 중견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산부인과> 개봉을 계기로 박철수가 언론들과 가진 몇몇 인터뷰 기사를 읽어 보아도 자기 자신,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고요.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이른바 자의식의 과잉이라는 것.

저는 <산부인과>를 보면서 내내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창작 주체자의 정신은 새로움에 대한 탐험이다.…보편적 질서에 대안을 제시해 보자는 중견 감독의 사명감을 느낀다.…"[<키노>, 1997년 6월호, 215쪽]라는 엄청난 말을 거리낌없이 토해 내는 사람이 만든 영화로 보기엔 그 속에 담긴 내용들이 너무나 평면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제가 보기에 <산부인과>는 대안은커녕 보편적인 것들마저도 제대로 나열하지 못하고 있는 영화더라 이겁니다. 아무래도 그의 사고가 그의 넘치는 자의식을 제대로 보조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감독한 이전 영화들을 죽 훑어 봐도 그렇거니와 그의 시각이나 통찰력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는 조짐이 보이지 않거든요. 이러한 까닭에서인지는 몰라도, 박철수가 시도하고 있는 보편적 질서에 대한 대안은 현재 고작 형식미나 파괴하는 표피적 수준에 머물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야기체 영화 구조를 탈피하고, 시종일관 들고 찍기를 감행하고, 또 속도전 식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하는 식으로 외형만 아방가르드를 취하면 뭣합니까? 사고의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는 제아무리 껍데기가 아방가르드를 외친다 한들 그 속에 담긴 내용물까지 아방가르드로 탈바꿈할 리 만무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박철수의 시각이나 사고, 통찰력은 그가 극복하려는 바로 그 보편성으로부터 아직까지는 단 한 치도 못 벗어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박철수는 '산부인과'라는 좋은 소재를 가지고도 그가 이전의 영화들에서 보여주던 것들, 즉 남근 중심적 '봉건'주의 가부장제[주 1]의 울타리를 탈피하지 못한 채 자신의 과거를 고스란히 반복/답습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물론 당사자인 박철수 본인은 전혀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문제는, 박철수가 <산부인과>를 '여성 영화'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규정지으면서 '여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여성 영화란 과연 무엇일까요? 다시 <키노>와의 인터뷰 기사로 돌아가 직접 박철수의 얘기를 들어 봅시다. 당신이 말하는 여성 영화의 개념이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는, "여성을 주제로 해서 상품화시켰기 때문에 여성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거다"라는 애매한 답변을 합니다[<키노>, 1997년 6월호, 214쪽]. 저는 이 대목에서 또다시 박철수 사고의 보편성/구태의연함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즉, 그는 그가 발 딛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라는 또 하나의 보편성 안에 깊숙히 매몰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301·302> 이후 계속 저예산 제작 방식을 밀고 나가는 것도, 속도전 식 촬영을 시도하는 것도, 한국 영화의 세계화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게 다 무슨 자의식의 발로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영화를 상품으로 인식하는 일종의 비즈니스맨 의식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체제 유지적인 자본주의의 논리에 푹 젖어 있는 박철수가 여성을 보는 시각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라는 보편성/구태의연함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힘든 것이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여성에 대한 이 시대 자본주의의 시각은 남성인 제가 보기에도 철저하게 남근 중심적 가부장제의 그것과 맞물려 있거든요. 결국 박철수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하나같이 남근 중심적 가부장제 질서에로의 영속적인 종속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마인드를 갖고 있는 박철수의 입장에서 본다면 결코 우연이 아닌 셈입니다[주 2].

아무튼, 박철수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한국의 '봉건'적이고 남근 중심적인 가부장제의 영향권 하에 있다는 저의 생각은, 페미니즘에 대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몰이해를 보여주는 그의 <키노>와의 인터뷰 기사 일부만 인용해 보아도 금방 뒷받침됩니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이상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물론 영화는 대체로 여성 편에 서 있다. …나는 여성이 약하고 혹은 보호받을 수 있을 때 진정한 여성성이 살아나는 것이라고 본다. …지금의 여성 주장들은 사회적으로 너무 강하기 때문에 원래의 여성성, 아름답고 보호받아야 하고 어리광부리고 하는 것들을 회복시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19세기 초까지도 그랬다.…" [<키노>, 1997년 6월호, 213-214쪽].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그가 <씨네21>과 가진 <산부인과>에 대한 인터뷰에서 불쑥 언급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건 여성성의 본질에 관한 거다"[제90호, 27쪽]라는 발언에서의 '여성성의 본질'이란 그저 남근 중심적 가부장제 사회에서나 효용성을 갖는 본질일 뿐이라는 점을 곧 깨닫게 됩니다. 아아… 그렇다면 제가 글 맨 앞에 인용한 박철수의 "세상이 깨끗해지려면 여성의 자궁이 깨끗해져야 한다"는 발언은 한 고독한 모더니스트가 세상에 던지는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가 아니라 혼전 순결과 남성 가부장권의 사수에 집착할 따름인 숱한 남근주의자 중 한 사람의 독백이라고 봐야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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