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
 <보디가드 The Bodyguard> 다시 보기 2/2  

1) 프랭크 파머(케빈 코스트너 분)가 만약의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레이첼에게 준 것이 하나 있지요. 기억나십니까?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단추를 누르면 즉시 프랭크의 수신기에 경고음이 울리도록 되어 있는 송신기입니다. 그런데 이 송신기의 형태가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나십니까? 예! 바로 크로스(cross), 즉 십자가죠. 그리스도인들에겐 대단한 의미를 지닌 형상입니다. 기표로서의 십자가는 이 영화에서 결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처량한 신세가 아닙니다. 아주 명료하고 단단하게 기의로서의 구세주/보디가드인 지저스 크롸이스트와 결합하고 있죠. 보디가드라는 직업이 어떤 것입니까? 긴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고객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직업 아닙니까? 프랭크는 비록 돈을 받고 남의 생명을 보호해 주는 사람이긴 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걸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바쳐 남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직업으로서의 보디가드는 구세주로서의 지저스와 일치합니다. 지저스 크롸이스트 또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영생을 주고자 스스로를 골고다 언덕 위의 십자가에 산 제물로 바쳤기 때문입니다. 단, 보디가드로서의 프랭크와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면 지저스 크롸이스트의 이러한 행위는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그래서 저 유명한 사도 바울(Paul)은 '구원'이라는 것을 가리켜 "죽으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들을 의롭게 하신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신약 로마서 3장 21-31절)라고 역설했던 것입니다.

각설하고, 구원의 상징인 지저스 크롸이스트의 십자가는 이제 영화에서 레이첼의 생명을 구하는 경보기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기묘하게 생긴 경보기는 보디가드로서의 프랭크/지저스 크롸이스트라는 중첩된 이미지로 다시 환원됩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레이첼이 암살의 위험에 직면하고도 시상식장으로 향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프랭크/지저스 크롸이스트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믿음 덕분이었지요. 그러니까 프랭크와 레이첼 사이에 싹튼 사랑과 신뢰의 감정은 바꿔 말하면 지저스 크롸이스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채 경보기/십자가를 손에 꼭 움켜쥐고 쉴새 없이 만지작거리던 레이첼의 모습은 그래서 저로 하여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구약 시편 23편 4절)라는 다윗 왕(King David)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2) 이번에는 레이첼의 친언니이자 개인 비서인 니키에 관한 얘기입니다. 니키는 비록 내색은 안 하지만, 동생 레이첼의 화려한 성공으로 인해 상대적인 열등감 나아가 굴욕감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프랭크에게 고백했듯이 자신은 레이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질투에 눈먼 니키가 한 짓은 동생을 살해하도록 킬러를 고용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연정을 품었던 프랭크에게마저 차가운 거절을 당하고 맙니다.

프랭크에게 거절당한 다음날 아침 니키가 산장 현관에 홀로 앉아 나직이 부르던 노래를 기억하십니까? 멀찍이서 이 노래를 들은 프랭크의 아버지가 프랭크에게 저거 교회 음악(church music) 아니냐고 묻던 'JESUS LOVES ME'라는 찬송가 아닙니까? 이 찬송가는 미국의 유명한 복음 성가 작곡가인 윌리엄 브래드버리(William B. Bradbury)가, 안나 워너(Anna B. Warner)라는 사람이 쓴 한 소설 속에 나오는 시에 곡을 붙여 1862년에 발표한 것이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예수 사랑하심은'(개신교 찬송가집 411장)이라는 곡명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개신교도들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꽤 친숙한 곡일 것입니다.

여하간, 모든 것을 잃고 프랭크에게까지 거절당한 채 세상에 내던져진 비참한 존재 니키에게 이제 자신을 지켜주고 위로해 주는 진정한 보디가드는 지저스 크롸이스트 한 분 뿐입니다. 울먹이면서 니키가 부르던 이 노래 'JESUS LOVES ME'는 그러니까 니키의 지저스에 대한 사랑 고백이자 참회록이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이렇게 참회를 끝낸 니키는 그 날 밤 어떤 의미에선 안식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녀를 레이첼로 착각한 킬러에 의해 살해당한 것입니다. 비극적인 죽음이긴 하지만, 어쨌든 니키는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지요. 니키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어떤 계시라도 받았던 것일까요?


3) 다음으로 얘기할 것은 라스트 시퀀스입니다. 여기서 또다시 등장하는 십자가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보디가드가 도대체 어떻게 해 볼 도리 없이 지저스 크롸이스트라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재확인시켜 줍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이 영화를 일관하는 상징물로, 혹은 일종의 아이콘(icon)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라스트 시퀀스가 끝나자마자 우렁차게 터져 나오는 휘트니 휴스턴의 그 유명한 "앤다~이아~"만 넋 나간 사람처럼 듣고 있지 말고, 라스트 시퀀스에도 한번 관심을 기울여 봅시다.

장소는 미국 아이오와 시(Iowa city; 아마 아이오와 주에는 아이오와 시라는 도시가 있는가 봅니다)의 어느 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로타리 클럽 만찬장.

만찬 전 감사 기도(benediction)를 위해 장로교(기독교 개신교의 한 분파임) 목사 한 사람이 단상에 서 있습니다. 거룩한 음성으로 기도를 시작하는 이 목사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죠. 레이첼이 만지작거리던 그 십자가와 어딘가 비슷하게 닮았다는 느낌이 드는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개신교도라면 목사의 이러한 기도 자세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개신교 목사들은 기도할 때 무슨 휴거 광신자나 구마(驅魔) 신부라도 된 것처럼 이렇게 십자가를 손에 들고 기도를 하지는 않으니까요. 저는 목사의 이러한 기도 자세를 일종의 영화적 연출이라 보고 싶습니다. 즉, 아이콘으로서의 십자가를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거죠. 하여튼 목사의 기도는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기도문대로 아주 상식적인 선에서 시작해서 역시 아주 상식적인 선에서 마무리됩니다. 같이 확인해 보기로 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비록 저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당신께서 저희를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목사의 기도를 듣고 있자니 앞서 언급했던 다윗 왕의 시가 또 다시 생각나는군요. 그런데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이때의 카메라 움직임입니다. 카메라가 어떤 동작을 보이고 있습니까? 목사에게로 천천히 다가가 그가 들고 있는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는가 싶더니 슬쩍 초점을 목사 뒤 단상에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프랭크 쪽으로 바꿔 버리지요? 그리고 나서 곧 프레임은 정지되고, 이어 그 유명한 "앤다~이아~"가 우렁차게 터져 나오면서 엔드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영화는 막을 내리죠.

이러한 카메라의 초점 이동은 결국 무얼 얘기하고 있습니까? 십자가/지저스 크롸이스트의 구세주로서의 이미지가 프랭크의 보디가드로서의 이미지와 명쾌하게 오버랩 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진정한 보디가드는 바로 지저스 크롸이스트라는 이 최종적인 환기 장치-라스트 시퀀스는, 만약 각본을 쓴 로렌스 캐스단이 이와 같은 의도에서 갖다 붙인 것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만약 그가 분명 이러한 의도에서 갖다 붙인 것이라면 저의 해석은 이 라스트 시퀀스로 인해 최종적인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며, 따라서 <보디가드>는 해석의 올가미를 벗어나 끊임없이 도망 다니기에 바쁜 '치사한' 영화라는 불명예스런 자리를 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저의 해석이 <보디가드>를 '영원히' 붙들어 매어 놓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4) 이제는 관심을 영화 상영 내내 쉴새 없이 흘러 나오던 이런저런 노래들에 집중시켜 보기로 합시다. 뛰어난 가창력을 자랑하는 우리의 휘트니 휴스턴이 우렁차게 불러 대는 노래들의 상당수는 사랑을 주제로 한 것들입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에겐 그야말로 달콤하고 감미롭기 짝이 없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겐 그저 그런 시시한 사랑 타령 유행가쯤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영화 해석에 기초해서 이 노래들을 들어 보면 -비약이라는 점을 굳이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노래들이 한낱 유행가 수준에서 거의 복음 성가 수준에 가까운 노래들로 탈바꿈해 버리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즉, 다시 말해서 이 노래들이 담고 있는 사랑의 대상은 바로 지저스 크롸이스트라는 것이죠. 지저스 크롸이스트를 향한 사랑 고백이자 골수 예수쟁이들의 찬양곡, 뭐 이런 식으로 해석해 버린다 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니겠지요? 내친 김에 노래 제목들이나 한번 훑고 지나가기로 합시다.

- I HAVE NOTHING : "주님, 이제 제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전 비참해요. 주님마저 절 버리고 가버리시진 않겠지요? Don't walk away from me. 흑흑~"

- RUN TO YOU : "이제 모든 집착을 버리고 주님께로 갈래요. 저를 주님 품에 받아 주세요. 그리고…"

- and I WILL ALWAYS LOVE YOU : "주님, 저는 언제까지나 당신만을 섬기고 따르겠어요. 앤다~이아~ 주님, 사랑해~요."


제 해설이 너무 지나쳤나요? 자! 이제 결론을 얘기하고 글을 마무리짓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보디가드>는 영화로서의 보여주기의 미덕을 갖춘 영화다. 비록 1997년 현재의 시점에서 보자면 꽤나 지루한 영화임에 틀림없지만. 둘째, <보디가드>에서 말하고자 한 진정한 보디가드란 양코배기들의 구세주 지저스 크롸이스트다. 셋째, 만약 <보디가드>의 각본을 쓴 로렌스 캐스단이 정치적-종교적 보수주의자가 아니라면 심정적으로라도 보수적 가치관의 옹호자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영화를 이처럼 온통 기독교 케리그마로 도배해 놓다시피 할 수 있단 말인가?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영화에 삽입되어 나오는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일본 사극 영화 클립에 현혹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극 영화의 타이틀이 '보디가드'쯤의 의미를 가진 일본어 <요진보 用心捧>(1961)라 해서 이에 과다한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구로사와의 사극 영화에 사무라이로 곧잘 나와 유명해진 배우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郞)의 전광석화 같은 칼솜씨 장면은 <보디가드>를 이해하는 데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레이첼이 프랭크 앞에서 날이 시퍼렇게 선 일본도를 겁 없이 휘두르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그저 각본을 쓴 로렌스 캐스단이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나 조지 루카스(George Lucas)처럼 구로사와라는 일본의 거장 감독을 흠모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시켜 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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