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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워즈 Star Wars> 3/3  

루크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양면성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으며, 또 바로 이 양면성을 아버지에게로 투사(projection)하고 대상화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지독한 양가 감정(ambivalence)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이 양가 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뿐이다. 곧, 자기 자신이기도 한 아버지와의 대결을 통해 아버지를 이기는 것. 물론 이 '이긴다'는 의미에는 단순히 물리적 승리를 쟁취한다는 의미 이상의 것, 즉 화해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이 어떤 식으로든 극복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벽'이 되어 버렸지만, 아들은 한편으론 자기 자신이기도 한 아버지라는 벽을 그저 깨부수고 빠져 나오기만 해선 안 되며 그렇다고 또 다른 벽을 쌓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스타워즈> 3부작 내내 나오는 루크와 다스 베이더의 대결 씬 이면에는 이상과 같은 심리적 요소들이 감추어져 있을 개연성이 충분하지 않은가?

나의 이러한 독해는 2부 <제국의 역습>에 나오는 한 씬으로 인해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루크가 대고바계(系)의 한 행성에서 요다로부터 제다이 기사 훈련을 받던 도중 침침한 동굴 속으로 내려가 난데없이 조우(遭遇)한 다스 베이더와 대결하던 장면을 상기하라. 이 씬에서 하필 동굴이라는 장소가 설정된 것은 아주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내가 '지형적 사고(topographical thinking)'라 부르는 사고 방식의 전형적인 일례인데, 여기서 동굴은 루크의 무의식을 지형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루크가 동굴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함정에 빠지듯 동굴/지하로 '미끄러져 내려감'에 주목하라. 즉, 의식과 무의식을 각각 지상과 지하로 설정했을 때 무의식은 지상의 의식계가 의식할 수 없는 지하-의식의 지평선 밑 땅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또 하나의 예가 바로 <사이코>에 나오는 베이츠 저택의 지하실로서 이 지하실 역시 노먼 베이츠의 무의식을 지형화한 것이다. 이외에도 유사한 예를 일일이 열거하려 들자면 한이 없을 지경이다. 무의식을 이렇게 지형화하는 사고 방식은 따지고 보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무의식의 발견자 프로이트가 이미 '지형 이론(Topographical theory)'이라는 명칭 하에 정신 기능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발표한 바 있기 때문이다. 비록 프로이트로부터 이끌어낸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지형적 사고'라고 명명한 이 개념은 아주 유용한 것이어서 다양한 영화의 독해에 적용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다른 지면을 빌어 상술해 볼 계획이다.

각설하고, 동굴이 바로 루크의 무의식 세계라는 독해는 행성의 몽환적인 분위기-태고의 신비감으로 가득 찬 듯한 원시림의 습하고 침침한 분위기-로도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된다. 아닌게아니라 루크는 대고바계의 행성에 무사히 착륙한 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는 소감을 자기의 하인 로봇 R2-D2에게 밝히고 있다. 프로이트가 그랬던가? "꿈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왕도(王道)"라고. 이렇듯 몽환적인 행성의 분위기는 루크로 하여금 쉽사리 자신의 무의식과 대면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무의식 속 깊이 들어간 루크는 무의식 한복판에서 바로 자기 자신이기도 한 아버지와 대결을 하게 된다 [이 대결 장면을 마치 꿈결처럼 슬로 모션으로 처리했다는 점이 그럴 듯하다]. 겁에 질린 아들 루크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와 광선검을 휘두르는 아버지 다스 베이더!

관객들은 난데없이 튀어나와 자신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 처치 곤란한 씬을 곧잘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씬은 루크의 처지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심리 장치 중 하나이다. 종국에 루크가 쓰러뜨린 자는 누구였는가? 다스 베이더였는가? 천만에! 바로 루크 자신이었다. 비록 다스 베이더의 가면으로 위장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 가면 안에 숨겨져 있던 실체는 바로 루크 자신이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루크/아들과 다스 베이더/아버지가 결국 동질의 인간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여기서도 오이디푸스적 갈등에 따른 아들의 친부 살해 모티프를 어렵지 않게 유도해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씬을 이렇게 얌전히 프로이트 식으로 읽어내려 한다면 상당한 무리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루크는 오이디푸스적 갈등에 시달릴 만큼 충분한 기회/환경을 제공받지 못한 채 성장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 채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그가 편모 슬하에서 성장했다는 암시 또한 영화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루크는 이성의 부모인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구로 인해 동성의 부모인 아버지로부터의 위협-'거세 불안'에 시달릴 이유가 없다. 나아가 루크는 같은 이유로 해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기에 형성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는 자신의 초자아(Superego)를 아버지의 권위나 힘과 동일시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동굴에서의 다스 베이더의 공격을 다스 베이더/아버지만큼이나 위협적인 존재로 화한 루크/아들 자신의 엄격한 초자아 기능과 동일시하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동굴/루크의 무의식에 나타난 다스 베이더는 아마 루크 자신의 '그림자(Shadow)'였을 것이다. 카를 융(Carl G. Jung, 1875-1961)의 분석 심리학에 의하면 이 그림자란 개인의 무의식 내용 중에서 그 개인의 자아가 가장 먼저 대면하게 되는 것-원형(Archetype) 중 하나인데, 의식의 자아 기능이 강화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무의식에 억압되는 자아의 반대 측면-부정적인 측면을 대개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그림자는 미숙하며, 도덕적 갈등을 유발하는 감정의 덩어리-무의식의 컴플렉스로서 자아에게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 그리고, 그림자는 어떤 개인의 자아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 혹은 집단에 쉽사리 투사(projection)되는데, 이 투사를 통해 외부로 표출된다는 특성을 갖는다. 이렇게 봤을 때, 루크가 동굴에서 대면한 것은 단순히 다스 베이더가 아니라 루크 자신의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던 그림자의 내용이 다스 베이더에게로 투사되어 나타난 일종의 표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루크는 다스 베이더라는 표상을 가진 자기 자신의 그림자와 대면하였다는 얘기이다. 어쨌거나 다스 베이더라는 페르소나(Persona) 자체가 루크의 권력 지향적인 악한 면/무의식에 억압된 부분/그림자를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종국에 가서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다스 베이더는 루크의 아버지이기도 하지 않은가? 결국 루크와 다스 베이더의 부자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일 수밖에 없다. 즉, 루크의 그림자가 다스 베이더라면 다스 베이더 자신을 위협하는 그림자는 역설적이게도 루크라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루크는 자신의 그림자와의 대면에서 이를 의식화하는 데에 실패하고 만다. 아직 제다이 기사 훈련을 덜 끝낸 루크/아직 덜 성숙한 인격을 소유한 루크는 그림자, 곧 무의식에 억압된 자신의 미숙한 부분을 성공적으로 의식계에 끌어올리지 못하고, 그림자가 주는 공포에 압도당한 채 이를 파괴해 버리는 우를 범하고 만다. 이 실패는 결국 루크가 자신의 그림자의 투사체인 다스 베이더/아버지와 화해하는 것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따라서 루크는 자신의 그림자가 대상화된 존재인 자기 아버지에 대한 지독한 양가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2부 <제국의 역습>에서 자기 아버지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다스 베이더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루크가 보인 격렬한 거부의 반응을 상기하라. 이 거부의 반응은 결국 긍정에 대한 강한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루크의 개성화(Individuation) 작업-자기 실현(Self-Actualization) 작업의 완결은 3부 <제다이의 귀환 Return of the Jedi>(1983)으로까지 미루어지게 되었던 것이었으니….

이쯤에서 화제를 원작자 조지 루카스에게로 돌려 보자. <스타워즈>에서 볼 수 있는 루크와 아버지간의 집요한 마찰은 실제로 루카스와 그의 아버지간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가십거리를 제공한다. 루카스와 그의 아버지는 실제로 어떤 관계였을까? 도대체 어떤 관계였기에 루카스는 그토록이나 부자간의 마찰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주인공 루크(Luke)의 이름은 원작자 조지 루카스의 루카스(Lucas)와 어딘가 닮지 않았는가? <타임 Time>지 1997년 3월 17일자 호는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아쉬운 대로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타임>지에 따르면, 루카스의 아버지는 사망하기 8년 전인 1983년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 절하 식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조지는 내 말을 들은 적이 없었어. 그 애는 걔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했거든. 이해하기가 힘든 애였어. 언제나 엉뚱한 짓을 생각해 내곤 했지. George never listened to me. He was his mother's pet. George was hard to understand. He was always dreaming things up."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자기 아들, 그것도 유명 인사가 된 아들에 대해 이토록 거친 반응을 보이는 아버지를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미국 유학 시절 루카스와 친구 사이였다는 고(故) 하길종 감독의 술회를 들어 보면 부자간의 이러한 껄끄러움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하 감독의 술회를 그대로 옮겨 보자.

"아일랜드계인 조지 루카스는 미국 사람치고는 비교적 작은 편이며 노란 머리에 노란 수염을 기르고 다닌다. 샤프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루카스는 수줍음이 많고 쇼맨십이 없다. 자기 선전에 열을 올리는 다른 젊은 영화인들과 퍽 대조적인 것이다. …이민의 후예라서 소년 시절을 고독하게 보낸 루카스는 국민학교 때부터 소설, 특히 공상 과학 소설을 많이 읽고 틈틈이 메모를 하며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워 왔던 것이다.…" [조지 루카스(저), <스타워즈>, 하길종(역), 서울: 예조각, 1978, '역자의 말'에서 인용]

루카스의 성품이 하 감독의 이 진술대로라면 전형적인 아일랜드계 기질을 지닌 것으로 짐작되는 그의 아버지와 그 사이에선, 아버지의 발언에서 목격되다시피, 필연적으로 마찰과 몰이해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루카스의 아버지의 발언에는 정신 분석학이 요구하는 오이디푸스적 갈등의 모든 요소가 담겨져 있다. 즉, 아들은 어머니의 총애를 받았으며, 이런 아들을 아버지는 싫어하고 있고, 아버지와 아들은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경쟁/대결 관계에 있다라는 것. 아버지가 유치한가? 아들이 유치한가? 아니면 어머니가 유치한 것인가? 루카스는 과연 오이디푸스적 승리를 쟁취한 아들이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된 무의식적 죄책감이 영화에서 다스 베이더/아버지로 하여금 광선검으로 냉정하게 루크/아들의 손목을 절단해 버리는 단계로까지 이르게 만들었던 것일까? 정신 분석학적으로는 그럴 듯해 보이는 이 시나리오에 대해 루카스는 별 관심이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스타워즈>에는 세인의 관심을 끌 만한 수많은 통속 심리학(pop psychology)의 내용들이 깔려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그저 심리학 지식에 불과한 흥미거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루카스의 말대로 <스타워즈>는 싸구려 통속 심리학 지식들의 적당한 버무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농담과도 같은 얘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진실을 발견해 낸다. 나에게 있어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으며 지금은 또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와 대립할 것인가 아니면 화해할 것인가? 아버지에게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파괴할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저 회피해 버리고 말 것인가? 당신은 과연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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