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y
 on PHILOSOPHY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 - 1/2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

이 글은 군복무 중이던 1994년 여름, 부대 내 교회지 <삶> 제2호에 실었던 글을 부분적으로 보완한 것이다. 군복무 시절에 대한 회상은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자연스레 머리에 떠오르는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 타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래도 그들은 인정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흔히 '초월신에 대한 존재론적 믿음'은 삶에 가치를 부여하려는 작업 중 가장 유치한 방식에 속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하고 유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은 아닐는지…. 문제는, 사람들의 이러한 어려움을 더욱 부채질하는 요소가 바로 다름 아닌 대한민국 땅의 기독교도들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교회-목사 비판과 기독교 비판을 동일시하는 유아(乳兒)적 형태의 신앙이 팽배해 있는 한, 사람들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神 일반까지도 기꺼이 무시하고 나아가 경멸하려 들 것이다. 2000/08/05.

어떤 의미에서 초기 교회사(史)의 주역들은 요즘 용어로 바꾸어 말하자면 혁명가와도 같은 그런 성격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겐 미래에 대한 강렬한 소망-비전이 있었고, 그것은 낡아빠진 '역사적 예수' 증명이니 '비신화화'니 하는 것들이 도무지 필요치 않은 일종의 종말론적 소명 의식이었다. 여기서 언급하는 종말론적 소명이란 세대주의적 성경 해석에 근거한 휴거 소동 따위와는 질적으로 다른, 말하자면 인간이 발 디디고 서 있는 이 시간과 공간, 즉 역사 속에서 단연코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강력한 희구에 근거한 지식-비밀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주체이자 주인이었지 결코 이 세상을 초월한 철학자의 신이나 이신론(deism)의 신이 아니었다.

강력한 소명 의식은 이에 상응한 실천 행위를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하나님 왕국[하나님 나라, 신국, 신의 나라, 천국, 하늘 나라는 하나님 왕국과 정확히 동일한 개념이다. 일부 신학자들이 하나님 왕국(kingdom of God)과 천국(kingdom of Heaven)을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는 입장을 취하는데, 이는 무의미한 분류법일 뿐이다]의 도래에 대한 종말론적 비전은 초기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열성과 연결되면서 힘찬 전도 운동을 유발하였다. 멀리 찾을 필요도 없이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을 상기하면 곧 이해가 갈 것이다. 이러한 전도 운동-종말론적 실천 행위는 그 후 서구 역사에 강한 인상을 남김으로써 인간 실존과 그 정체성(identity)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지극히 저속하게 변질된 모습으로 반복하여 등장하게 되었다. 문화사가인 호이징가(J. Huizinga)가 '중세의 가을'이라고 표현했던 14세기 유럽이나 종교 개혁의 혼란기에 빈번하게 발생했던 세속적 천년왕국 운동, 근대의 프랑스 대혁명, 나아가 20세기의 나치즘과 공산주의의 실험은 하나같이 현실에서의 궁극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는데, 유토피아 건설의 꿈은 알고 보면 미래에 대한 기독교적(하나님 왕국의 도래라는 종말론적) 비전이 서구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진보 사관으로 대체되면서 발생한 것에 다름 아니다. 신이라는 대상을 점차 상실해 간 역사를 가진 서구이고 보면, 역사의 궁극에 이르러 하나님의 왕국이 옴으로써 '이 역사'가 완성된다는 사고 방식이 무한한 진보에 의해 인간의 왕국이 완성된다는 사고 방식으로 바뀌어 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통칭 휴머니스트들은 가능하면 서구 역사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배제시키고 싶어하므로 이상과 같은 역사 해석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태도를 전혀 이해 못할 것도 아닌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유(계몽 시대에 확립된 근대적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를 추구하는 인간에게 기독교회가 역사적으로 이 자유를 억압하는 거대한 권력 기구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권력 기구로서의 교회의 대중적 이미지에 중세 카톨릭 교회 체제가 한몫 단단히 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중세 카톨릭 교회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은, '권력'이라는 담론은 결코 중세적인 것이 아닌 지극히 근대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중세 교회에 대한 고찰에는 중세 유럽이라는 컨텍스트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갖는 권력이라는 측면만으로 기독교나 교회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며, 게다가 헬레니즘과 더불어 서구 문화 곳곳에서 여전히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히브리-기독교 사상의 실체를 무시할 수는 더더군다나 없는 일이다.

사실, 유토피아 사상과 진보 사관의 기원이 기독교라는 식의 논지를 굳이 펴지 않더라도 신구약 중간 시대에 형성된 유대의 호전적인 '정치적 메시아니즘'은 이미 그 당시에 지상에서의 천년왕국에 대한 염원을 드러내고 있다[물론 '천년왕국' 사상은 기독교 종말론의 한 형태에 불과하며 유대인이나 유대교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이 단어를 보다 포괄적인 용법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즉, 구원이 저 세상이 아닌 이 지상에서 바로 지금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구원론의 한 유형을 이 단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구약 시대에 많은 선지자들이 남긴 메시아 예언이 세속적으로 변질된 결과였고, 한편으로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강력한 통일 왕국에 대한 추억이 빚어낸 결과이기도 했다. 여하간 이 천년왕국 사상이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갈구한 유대인들에 의해 비록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하나의 이즘으로 변질돼 버리긴 했지만, 원래가 신정적(theocratic)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데다 히브리-유대 특유의 묵시문학적 종말 사상에서 연유한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동일한 풍토에서 성립되어 세계 종교로까지 발전한 기독교에 이 사상이 어떠한 형태로든 반영될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알고 보면, 종말론적 유토피아 사상은 -비록 '유토피아'라는 단어의 어원이 그리스어이긴 하지만- 헬라스(Hellas)를 선호하는 통칭 휴머니스트들의 바람과는 상관 없이 그리스적이라기보다는 히브리적 사유에 가깝다. 그리스적 사유에 직선적 시간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역사의 주체로서의 신이라는 개념이라든가 종말에 대한 소망, 미래에 대한 비전 따위의 사고 유형은 고대 그리스인에게선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종교란 국가적 차원에선 그들을 각 폴리스로 뭉쳐주는 작용을 하는 일차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그들의 공식 신인 올림포스 12신도 역사의 주체라기보다는 방관자와도 같은 그런 위치에 있었다. 오비디우스의 신화집이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신들을 훑어보면 금방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그들의 신은 방관자일 뿐만 아니라 신 자신도 운명의 힘을 거역하지 못한다. 이러한 성격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생각한 신에게까지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바, 예를 들어 플라톤이 생각한 조물주 데미우르고스도 그 자신 만물을 전지전능하게 다룰 수 있는 그러한 위치에 있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후대의 교부 신학,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플라톤 철학은 그 근원을 역사보다는 이 역사를 초월한 이데아의 세계에 두고 있었다. 이데아를 하나의 정형 내지 이상으로 보는 사고 유형에서 역사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찾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무리다. 어떤 이는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 제시되는 유토피아에 관한 서술을 예로 들면서 그리스 사상에도 유토피아 이론이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플라톤이 제시한 유토피아 즉 이상 국가는, 분명히 말하지만, 이데아의 모형일 뿐 종말에 완성될 신의 나라는 결코 아니다. 그리스 사상에 종말론적 시간 개념이 도입된 것은 로마 제국 내에 기독교의 영향력이 광범위하게 퍼진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그리스식 사유로써 종말론을 체계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를 그리스화시켰다는 비난을 받을 만큼 플라톤적인(엄밀히 말하면 신플라톤주의, 특히 플로티노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초기 교회사 최대의 교부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기독교의 틀 안에서 그리스식 사유를 적용시켰고, 그의 신앙이 자서전인 <고백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실제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는 점에 있다. 그는 그 때까지 정태적이고 무목적적이던 그리스식 시간관에 신의 나라의 완성이라는 종말관을 도입함으로써 역사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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