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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의 시간관이 순환론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순환론적 시간관은
자연의 주기를 중요시하는 농경 문화에서 발생한
다른 여러 종교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이
농경 문화적 요소에서 비롯된 시간관이야말로
히브리식 사유와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선 그리스의 공식적인 국가 종교와는
구별되는 또 하나의 체제, 즉 니체가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던 디오니소스적 성향이라는
측면을 통해 접근해 보기로 한다.
국가 종교에의 형식적인 예배와는 달리 고대
그리스인들은 영성, 즉 인간의 진정한 종교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발생한 이른바 밀의
종교-예를 들면 디오니소스교나 오르페우스교;
심지어 피타고라스 학파로 알려진 그룹도 일종의
밀의 종파로 재확인되고 있는 실정이다-의 제전에
또한 참여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런데 이 제전은
그리스인의 감성을 폭발적으로 해방시키는
배출구의 역할을 한 동시에 자연의 순환에 따른
생명의 탄생과 성숙, 죽음과 부활(계절의 변이를
상기할 것)에 대한 신화를 제의(ritual)라는 형식을
통해 현실에 재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신화의 반복적인 재현이라는 점에서 밀의 종교는
공식적인 국가 종교와 마찬가지로 신화를
신화로만 머물게 할 뿐 결코 신화를
역사화시키지는 못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의미를 갖는다. 즉, 단 일
회의 역사적인 부활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종교의 신처럼 신화의 재현을 통해서만
상징적으로 부활하는 무기력한 신이 아닌 진정한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결코 신화에 그 근거를 둔 종교가 아닌 '역사적'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갖는, 그리고 무려 이천 년
전에 태동한 종교인 기독교가 아직도 생생한 힘을
발휘하는 진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태초부터 살인과 폭력으로 얼룩져 버린 인류
역사이고 보면 우리의 심성 깊은 곳뿐만 아니라
그 심성들의 집합체인 우리의 사회 또한 그
구조의 숨겨진 내면에 악[나는 아직도 악을
존재론적 실체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나타난
하나의 현상으로 보아야 할지 결정짓지 못했다.
이 문제는 사탄이나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느냐의
여부와는 별도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다]의
한 표현 양태로서의 폭력이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의 치하에서 좌절감을 느낀 숱한 유대인들의
억압된 폭력성을 배출시키고 해소시키기 위해
선택된 일종의 희생양이었을 수도 있다. 즉,
정치적 논리에 의해 희생당했다는 것. 예수가
정치적 메시아로 옹립됨으로써 하나의 커다란
정치 세력을 이룰 경우 이에 위협을 느낀 로마가
유대를 완전히 복속시키고자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감지한 사두개파(나아가 바리새파)의
입장에서 예수는 불필요한 힘의 구심점이 될
뿐이었다. 결국 이들이 유대의 안정을 위해
예수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가 음모를 위한 회합 중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를 제거하고자 했던 자들에겐 다행이게도,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후 유대인들은 예수가
명백히 정치적 메시아가 될 의사가 없음을 알게
되었고, 이런 이유로 예수는 자연스럽게 영광의
메시아로부터 폭력의 희생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은 다른 종교나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희생양의 죽음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갖는다. 여기서 우리는 프랑스 사상가
르네 지라르(Rene Girard)의 희생양에 대한 논의를
도입함으로써 예수의 죽음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지라르에 따르면 원시 종교에서의 희생이란 그
진정한 성격이 신에 대한 제사에 있다기보다는 '사회적'이다.
즉, 희생은 그 사회 집단의 붕괴를 막기 위한
공식적인 폭력의 배출구라는 말이다. 희생양에
집단 구성원의 공격성과 모든 파괴 욕망을
집중시킴으로써 구성원들의 상호 폭력에 의한
무질서와 집단의 파멸을 사전에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때의 희생양은 집단 구성원의
모든 응어리를 전가시킬 수 있도록, 한편으론
복수할 의사-능력이 없으면서 한편으론 비난할
만한 죄를 가진 대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 그는 기존의 이러한 모든
희생양의 성격을 거부하며, 오히려 그의 죄
없음과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부당함이 신약
복음서들에 기술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의 무죄를 말없이 증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제시되는
새로운 신(神) 개념은 그 때까지 원시 종교가 갖고
있던 신과 폭력과의 연결 고리를 철저히 파괴한다.
그 때까지의 종교적 규범으로서의 폭력에
의지하지 않고 화해와 용서와 사랑을 새로운
규범으로 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이는 길만이 우리가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종합컨대, 예수 그리스도는 악의 가장 궁극적
표현 양태라 여겨지는 '사망'을 이김으로써
부분적으로는 유대인들의 폭력에 의해 희생된
단순한 종교적-정치적 희생물이 아님을 보여
주었고, 나아가 앞으로 있을 모든 종교적 폭력과
희생의 메커니즘을 붕괴시킴으로써 인간이 악과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을 제시해
주었다. 폭력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나님 왕국의 도래에 의해 비로소 종결되고,
인간은 그 때에야 진정한 사랑의 안식 가운데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은 사랑과 화해라는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이 때의 사랑이란 물론
막연한 관용의 정신과는 다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사랑의 규범인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종말의 시기까지 영원한
현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되찾지
않으면 안 될 진정한 '영웅'의 원형(原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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