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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일리언 Alien> 잡기장 1/3  
잡기장(雜記帳)

이 글은 1998년 1월, 웹진영화의 REVIEW 섹션에 '<Alien Resurrection 에일리언 4> 잡기장(雜記帳)'이라는 제목으로 실었던 것이다. 본 웹 사이트에 올리면서 제목을 '<에일리언> 잡기장'으로 바꾼 이유는, 이 글이 비록 <에일리언 4>에 대한 리뷰라고는 하나, <에일리언> 시리즈 전체를 조감하는 가운데서 제4편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에일리언 4>가 전작(前作)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당연하다. 2000/07/16.

1. Alien. 이 영어 단어는 '에일리언'이라고 표기해야 옳다. '에이리언'이 아니다. 에이리언이라는 표기가 맞다고 우기려면 영어 단어 자체가 Alien이 아닌 Arien으로 바뀌어야 한다. 영어 알파벳 L과 R 사이엔 발음의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 뚜렷한 차이는 'ㄹ' 하나 더 첨가해 주느냐 마느냐라는 아주 효율적인 표기 방식을 동원하면 한글로도 영어 원음의 근사치에 가까운 구분이 가능하다. 굳이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김영삼 정부 덕에 유명해진 영어 단어 global은 '그로벌'이 아닌 '글로벌'로, grotesque는 '글로테스크'가 아닌 '그로테스크'로 표기한다는 식이다. 이처럼 간단하게 한글 표기에 의한 L과 R의 구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의 외화 수입업자들은 죽어라 '에이리언'이라는 표기를 고집하는지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한글 공부를 제대로 안 했거나, 혹은 영어 공부 할 때 L과 R 발음의 구분법을 미처 터득하지 못한 탓이겠지. 그나저나 '에이리언'도 아닌 '에어리언'이라는 국적 불명의 발음과 표기를 하는 사람들은 대관절 뭔가? 아무튼, 우리나라에서 Alien/에일리언은 Arien/에이리언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Airien/에어리언으로 변천한 자랑스런 경력을 갖고 있다.

2. 우리의 외화 수입업자들이 외화 타이틀의 한글 표기나 번역에 무신경하기 짝이 없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그 놀라운 무신경에 감탄을 금치 못할 지경인데, <에일리언>만큼은 어쨌든 영문 타이틀 그대로 한글 표기를 감행한 것이 -비록 무신경의 소산이었다고는 하나- 현명한(?) 처사였다는 판단이 든다. Alien은 다중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므로 의역한답시고 무슨 <전율의 외계인>이니 <외계로부터의 공포>니 <우주 괴물의 대습격>이니 <우주의 식인 괴수>니 하는 황당한 한글 제목을 지어다 붙이지 않는 이상, 설사 직역한다 하더라도 이 단어가 갖는 다양한 의미를 단 하나의 한글 단어로 드러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외계인? 우주인? 이티? 이방인? 외국인? 이국인? 외지인? 타지인? 타자(他者)? 타인? 그 어떠한 것도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게다가 영화 내에서도 우주 괴물은 영문 타이틀 그대로 'Alien'이라고 호칭되고 있고 보면 역시 <Alien>은 <에일리언>일 수밖에 없다. 그건 그렇고… <데블스 오운>이니 <데블스 에드버킷>이니 <낫싱 투 루즈>니 <업 클로스 앤 퍼스널>이니 하는 한글 영화 제목들은 도대체 뭔가? 우리나라의 외화 수입업자들은 한국놈들인가, 아니면 미국놈들인가? 도대체 어느 나라 놈들이냐!

3.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에일리언> 제1편이 등장한 것이 1979년. 그로부터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1997년, 프랑스인 장-피에르 주네가 감독한 제4편이 개봉되었다. 그 20년의 세월 동안 이 <에일리언> 시리즈는 수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배설된 수많은 담론들에 의해 수많은 의미의 연결 고리를 양산하고 또 양산해 내는 대단히 복잡한 하나의 네트워크가 되어 버렸다. 결국 제4편에 대한 논의는 전작(前作)들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이치. 따라서 그간 <에일리언> 시리즈에 대해 어떠한 말들이 오갔는지 대강 훑어보는 것은 제4편의 논의를 위해서라도 필요불가결한(?) 요식 행위가 될 수 있을 것. 대체로 크게 다음의 네 가지 얘기로 추려질 수 있겠다.

1) '에일리언'이라는 호칭에서 비롯된 다소 형이상학적이고 모호한 해법 : 에일리언은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 그대로 낯선 외적 존재다. 내가 아닌 너이고, 우리가 아닌 그들이다. 그런 '너와 그들'로서의 에일리언이 바로 '나와 우리'의 신체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가 터져 나오면서 나와 우리를 파괴해 버린다. 나와 우리라는 존재 그 자체까지 파멸시켜 가면서 나와 우리의 내부에서 비집고 나오려 드는 이 무섭고 끔찍한 형상은 곧 인간에게 감추어져 있는 근원적인 악(惡)과 폭력성을 의미한다. 기독교적으로 풀이하자면 타락한 피조물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원죄의 소산이라는 것. 생물학적 다위니즘으로 풀이하자면 하등 동물의 후예인 인간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광폭한 야수성의 발로이기도 한 것. 여하간 인간은 악이라는 이름/노멘/NOMEN으로 표현되는 자신의 이 추악한 본질/죄질/야수성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으므로 그것은 인간 자신에 의해 영원히 외적 존재/에일리언으로 유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나, 한편으로 그것은 곧 인간 자신의 떼어 낼 수 없는 한 부분/속성이기도 하므로 언제든 인간 내부에서 틈만 있으면 비집고 나올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에일리언 3>(1992)에서 앤드로이드 비숍이 주인공 리플리에게 한 말을 상기하자. "그것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2) 근래 새뮤얼 헌팅턴에 의해 유행하기 시작한 이른바 '문명 충돌론'에 의거한 해법 : 냉전 체제가 무너진 이상 차후 '문명'이라는 요소가 이념을 대신하여 전지구적 갈등과 마찰을 야기하는 가장 큰 변수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헌팅턴의 논리를 <에일리언>에 다소 무리하게 대입시키면, 에일리언이란 존재는 다름 아닌 서구 문명이 비서구 문명에 대해 갖는 공포와 두려움의 형상화라는 것. 전우주를 대상으로 식민지를 개척해 나가는 영화상의 지구인들의 모습은 과거 거침없이 전지구를 지배해 왔던 서구 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은유이기도 한 것. 이제 이 우월한 지배력을 상실하게 된 서구 문명에게 있어 비서구 문명은 그저 단순히 불편한 감정이나 생기게 만드는 낯선 이방인/외국인으로서의 수준을 넘어 서구 자신을 위협하고 심지어 지배하려 드는 무서운 존재로 성큼 다가오고. 그간 서구의 우월성에 억압되어 왔던 비서구의 분노는 절대 타자인 외계 생명체 에일리언의 흉측한 모습(인종적 차별과 낯선 존재에 대한 공포의 구체적 표현)과 가공할 파워(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이슬람권의 호전성), 그리고 놀라운 번식력(아시아의 엄청난 인구 증가)을 통해 폭발하여 마침내 서구에 그 적개심을 한껏 표출한다. 이에 속절없이 압도당하는 서구. 영화는 비서구에 대한 어떠한 동정심도 생길 수 없게끔 에일리언을 완벽하게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탈인격화된 맹목적적인 '생물 기계'로 묘사함으로써 서구/주류/지구인의 비서구/타자/에일리언에 대한 억압과 파괴를 정당화시킨다. 이를 통해 서구는 계속해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해 나가려 든다. 그러나, 서구가 아시아에서 발생한 현재의 일시적 금융 위기를 이용하여 자신의 자본 제국주의로서의 면모나 과시하려 들 경우 종국엔 더더욱 흉폭한 에일리언의 분노에 맞닥뜨리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하리라….

3) 호모 비평가 로빈 우드의 호러 영화에 대한 접근 방식에 의거한 해법 : <에일리언> 시리즈가 SF와 호러를 뒤섞어 놓은 영화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 로빈 우드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이론, 특히 신경증/노이로제의 발병이 '억압/repression' 기제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의거하여 호러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을 신경증에 대한 영화적 등가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한다. 즉 괴물/신경증이란, 무의식에 "억압된 것들의 귀환"이라는 것. 오랜 기간 무의식 깊숙히 억압돼 왔던 것들인 만큼 뒤틀리고 왜곡되었을 것임은 당연한 일. 괴물은 이러한 병적 상태를 형상화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존재이다. <에일리언> 시리즈를 관통하는 억압 체제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문명. 에일리언을 포획하여 생물 무기를 개발함으로써 각자의 이익을 챙기려는 '회사'와 '군부'와 '국가'의 치열한 탐욕은 이윤 추구라는 자본주의의 대명제 하에 뭉쳐져 주인공 리플리 중위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것도 희생할 수 있다는 극단적 논리로 무장한 영화상의 자본주의 체제는 파쇼적인 위계 질서와 합쳐지면서 사람들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제약한다. 즉, 억압한다. <에일리언 1>의 우주선 노스트로모 호 승무원들에게 강요된 금욕적인 삶이 그들을 얼마나 긴장 상태에 빠뜨리고 있는가? 금욕/통제/억압은 이윤 산출을 위해선 반드시 요구될 수밖에 없는 전제 조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에일리언> 2편과 3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두 군대의 병사나 형무소의 범죄자들처럼 남성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지독한 억압과 통제의 돌담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어 자본주의 체제가 구축해 놓은 숨막히는 일상성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유린하는 신경증적 괴물이 바로 에일리언인 셈. 이드(Id)적이고, 그래서 본능에 의해서만 행동하고 번식하는 이 괴물은 자본주의/문명의 수호라는 미명 하에 결국 억압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것은 오로지 완전한 파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괴물은 결코 길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4) 페미니즘에 의거한 해법 : 페미니즘이란 모호한 분야가 과연 어떤 큰 학술적 연구 가치가 있기는 한 것인지 개인적으로 극히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H.R. 기거(화가임. 그의 공식 웹 사이트 주소는 www.hrgiger.com)가 창조해 낸 에일리언의 그 남근적 형상과 리플리의 묘한 중성적 이미지로 인해 페미니스트들의 접근법은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아닌게아니라 남근으로서의 에일리언은 여성의 생식 기관처럼 복잡한 우주선과 우주 기지와 형무소의 미로와도 같은 구조에 침입해서는 그 안을 멋대로 유린해 버린다. 정액처럼 끈끈한 산성의 분비액을 흘리면서 활개치고 돌아다니는 에일리언의 모습은 곧 여성의 신체를 지배하고 독점하고자 하는 '남근'의 힘, 곧 권력을 의미한다. 페미니스트들의 시각으로 보기엔 너무나 참혹한 이 여성 비하의 유혈 공간에 이제 우리의 해방 전사 리플리가 등장한다. 리플리는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에게 있어선 그들의 입장을 집약하여 보여 주는 대표적 표상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리플리가 처음부터 페미니스트의 속성을 보여 주었던 것은 아니다. 비교적 호러 영화의 공식에 충실하였던 <에일리언 1>에서 리플리는 끝까지 관음의 대상에 불과했을 따름이다(아슬아슬한 속옷 차림으로 두려움에 질린 채 에일리언/남근의 시선을 피해 숨어 있던 리플리를 상기하라). 관음의 대상이던 리플리가 페미니스트 여전사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분명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한 <에일리언 2>(1986) 이후의 일이다. 아무튼, <에일리언>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점차 남성의 능동적 파워와 여성의 모성적 부드러움 양쪽 모두를 겸비한 이상적 인간형으로 발전해 가는 리플리는 여성으로서 남성의 시선을 끄는 수동적인 페티시즘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한 채 남근 권력 일반(一般)의 횡포와 탄압에 맞서 사력을 다해 투쟁한다. 그리고 <에일리언 3>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신인(神人) 동형의 경지에까지 도달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 그리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 곧 신의 '아들'의 지위에 등극하고 있다. 한 서구의 페미니스트 비평가(이름은 잊어 버렸다)가 시고니 위버가 분한 리플리를 가리켜 영화사상 최초로 진정한 자기 정체성을 갖는 여자 주인공이자 페미니스트 전사라는 극찬을 서슴지 않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제 4편이 개봉되면서 이 <에일리언> 시리즈와 관련하여 페미니즘 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것은 부활한 리플리가 재림 예수로서의 속성보다는 어머니, 그것도 에일리언의 어머니(!)로서의 속성을 더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용맹한 여성 전사 아마존에서 인류를 구원한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로 변모를 거듭하던 페미니스트 리플리는 마침내 원치 않은 자식을 낳게 된 비련의 어머니가 되어 이제 <에일리언>을 가장 골치 아픈 '낙태 논쟁'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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