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
 <에일리언 Alien> 잡기장 2/3  

4. <에일리언 4>에 대한 총체적 조감

<에일리언> 시리즈가 생산해 낸 모든 담론들이 이 4편에 이르러 더더욱 꼬이고 뒤틀려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극에 달해 버렸다는 느낌이다. 미국놈들보다 관념적이라 재미있게 이야기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아무래도 얘네들보다 서툴 수밖에 없는 프랑스놈이 감독을 맡아서 그런가? 더 뒤틀리기 전에 <에일리언> 시리즈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3편에서 완전히 죽어 버린 리플리를 되살려 내면서까지 4편을 제작한 양반들의 돈/오카네에 대한 그 놀라운 집념 때문에라도 후편들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 명약관화한 사실. 어쨌든 4편은 에일리언 쇼크와 밀실 공포로 따지자면 1편보다 못하고, 긴박감과 재미와 액션으로 따지자면 2편보다 못하며, 장엄함으로 따지자면 3편보다도 못하다. 거기에다 가당찮은 재난 영화의 요소까지 도입되어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에 나오던 그 진부한 수중 탈출 씬(재작년에 만들어진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재난 영화 <데이라잇>에서도 반복된 바 있는 바로 그 씬)이 그대로 모방, 반복됨으로써 짜증을 배가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바로 이 점으로 인해 다리우스 콘쥐의 기가 막히다고 밖엔 말할 수 없는 그 놀라운 수중 촬영 씬이 애석하게도 완전히 퇴색해 버리는 비운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렇다고는 하나, <에일리언 4>는 여전히 읽을거리가 많은 흥미진진한 텍스트이다. 리플리의 부활이 그렇고, 리플리와 앤드로이드 콜(위노나 라이더 분)과의 관계가 그렇고, 리플리와 퀸 에일리언과의 관계가 그렇고, 리플리와 변종 에일리언 새끼와의 관계가 그렇고….

5. 리플리의 부활

4편의 타이틀 자체가 <에일리언 부활>이니 만큼 '부활'에 별도로 한 장을 할애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사실 리플리의 부활은 이미 전작인 3편을 통해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3편에서 리플리의 죽음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다시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사망한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그것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리플리가 왜 스스로 죽음을 택했는가? 자기 몸 안의 에일리언이 적출되어 지구로 옮겨지는 날에는 전인류가 파멸하게 되고 말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막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쪽을 택한 것이 아니던가? 여자 그리스도라… 자! 박해와 수난을 당한 뒤 치욕적인 십자가형에 처해져 죽은 예수 그리스도/리플리에게 남겨진 다음 과제는 무엇이겠는가? 마땅히 사망 권세를 이기고 승전가를 부르며 영광스럽게 부활하는 것! 결국 4편에서 리플리는 신적 권능 대신 인간의 탐욕과 자연과학의 오만한 힘을 빌어 그 불경스러운(?!) 부활에 성공하고야 만다. 이상의 기독교적 해석이 터무니없지만은 않은 것은, 3편에서 이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분명한 암시들이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플리가 용광로 속으로 투신할 때 두 팔을 옆으로 벌려 마치 십자가에 못박힌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상기하라. 게다가 우주 변방의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황폐한 형무소의 묵시록적 분위기 속에서 죄수들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여 믿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다름 아닌, 종말에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가 지상에 재림하여 천년왕국을 구현할 것이며 자신들은 메시아와 더불어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이른바 세대주의적 '기독교 근본주의(Fundamentalism)' 아니던가? 이 순진하고 불쌍한 죄수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이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메시아는 엉뚱하게도 구명정을 탄 리플리의 형상으로 우주 공간에서 지상으로 강림하고, 복락의 천년왕국 대신 무시무시한 묵시록의 파멸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니…. 그러나 어찌 하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메시아를 증거하는 선한 백성들/성도들은 지상에 구현될 천년왕국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기에 앞서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인 '용/드래곤'과 그의 권세를 물려받은 '짐승/적그리스도'에 의해 자행되는 대환난의 끔찍한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인 것을. 에일리언을 난생 처음 목격한 죄수 하나가 혼이 나간 목소리로 에일리언을 가리켜 뭐라 불렀는지 상기해 보라. 용/드래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6. 부활체 리플리의 운명은?

4편에서 리플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신령한 부활체를 입고 재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불경스럽게도 에일리언 곧 용/사탄의 권세를 이어받은 짐승/적그리스도로 재탄생하고 있다. 이게 대관절 무슨 말인가? 부활한 리플리의 모습을 상기해 보자. 악마의 장난과도 같은 복제 실험을 통해 재탄생한 리플리는 복제 과정에서 자기 몸 안에 기생하고 있던 퀸 에일리언과 유전자 재조합 과정을 거치게 됨으로써 본의 아니게 에일리언의 요소를 물려받는다. 즉, 사탄의 권세를 이어받는다. 보라! 그녀는 이제 과거와 같이 연약한 살덩이를 소유한 일개 인간이 아니다. 혈관에는 강철도 녹이는 산성의 피가 흐르고 두꺼운 철판까지도 맨손으로 뜯어내는 괴력을 지닌 기괴한 형태의 부활체로 재탄생하고 있지 아니한가? 반인반수(半人半獸)가 된 채 짐승/적그리스도로서 지구에 강림하는 리플리는 과연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는 용/사탄/에일리언의 화신이 될 것인가? 인류는 그녀로 인한 신의 진노를 피할 길이 정녕 없단 말인가? 물론 여전히 구원의 희망은 남아 있다. 자신의 내부에 엄연히 존재하는 짐승/야수로서의 본질을 혐오하여, 우주선 실험실에 진열돼 있던 또 다른 자신의 참혹한 복제물들을 파괴하며 철철 눈물 흘리던 모습을 리플리 스스로 상기해 낼 수만 있다면…. 그리고, 인류를 위해 자신이(혹은 자신의 딸이) 낳은 어둠의 자식마저 가차없이 제거해 버리던 눈물겹고 위대한 모성애를 리플리 스스로 회복해 낼 수만 있다면…. 자! 리플리는 다시 한 번 더 인류를 구원할 진정한 그리스도/구세주/메시아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인류를 파멸로 이끌 적그리스도/짐승이 될 것인가? 과연 어느 쪽이 될 것인가? 부활한 리플리의 운명은?? 차기작인 <에일리언 5>를 보면 된다. ;b....

7. 부활체 리플리에 대한 생물학적 다위니즘식 해석

앞서 3-1의 논의를 잠시 연장해 보자. 리플리의 부활체는 최신 과학 기술에 의해 인간성과 야수성이 완벽하게 융합된 상태이다. 역설적이게도, 야수/에일리언과 완벽한 융합을 이룬 인간 리플리는 야수로서의 퇴화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면밀히 관찰하던 과학자들 또한 경이를 표했듯이- 오히려 최고로 진화된 인간의 우월한 모습을 보여 준다. 진화의 최고봉에 서 있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갖는 자부심의 증거인 이타성, 도덕성, 종교성, 예술성 같은 추상 작용이라고는 눈꼽만큼도 갖고 있지 않은 채 거의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생물 기계이자 추악한 하등 파충류/용의 특성마저 지니고 있는 에일리언의 열등 유전자가 오히려 리플리의 진화를 촉진시킨 것이다! 이는 그간 축적되어 온 생물학적 진화론의 연구 업적에 대한 얼마간의 모독이며 또 조롱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진화론에 따르자면 우리 인간의 태곳적 조상이야말로 다름 아닌 파충류가 아니던가? 우리의 뉴런 어딘가에, 우리의 뇌 어딘가에, 우리의 집단 무의식 어딘가에 은폐된 상태로, 잠재된 상태로 우리의 진화론적 조상인 파충류의 속성이 각인돼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인류 진화의 원천은 우리가 고귀하다고 여기고 있는 인간 특유의 성품들, 곧 대뇌 피질의 소산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대뇌 피질 속 깊숙히 파묻힌 채로 잊혀져 버린 부분, 곧 파충류적 본능이 깃들여 있는 태고 영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그래서 폴 맥클린 Paul MacLean 은 인간 뇌에서 가장 원시적인 구조라고 생각한 영역에 이른바 '파충류 복합체 Reptilian complex'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까?) 그렇다면, 에일리언/용/파충류는 그저 틈만 있으면 비집고 나와 우리를 파괴하려 드는 내부의 낯선 타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와 융합해 있는 우리 자신의 일부분/본질일 수도 있으리라. 에일리언/파충류와 융합된 형태로 재탄생한 리플리의 기묘한 부활체를 상기해 보라. 여기서 재작년에 작고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자신의 한 저서에서 남긴 다음의 구절을 같이 음미해 보기로 하자. "우리가 용을 두려워했을 때 우리는 과연 우리들 자신의 한 부분을 두려워한 것일까?"

8. 인간/여자는 왜 에일리언/용/옛 뱀과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가? 그 기독교적, 진화론적 접근

에덴 동산에는 용, 곧 뱀이 있었다. 아담과 이브에게 선과 악이라는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대뇌 신피질의 기능을 물려준 것은 바로 이 용/뱀/파충류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담과 이브를 에덴의 낙원에서 추방당하게 만든 것도 이 용/뱀/파충류였다. 선악의 가치 판단 능력을 획득하게 된 인간은 그 대가로 신의 저주를 받아 타락한다. 아울러 신의 명령에 의해 뱀은 여자와 그 후손의 영원한 원수가 되고,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신의 계시가 내려진다. 신학자들은 구약 창세기에 기록된 이 '여자의 후손'을 예수 그리스도/메시아에 대한 최초의 예언으로 보고 있으며, 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구절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극복함으로써 사탄 권세를 이기고 믿는 자들을 구원하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어쨌거나 여자의 후손인 우리 인간(실로 인간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 여자의 후손/어머니의 자식일 수밖에 없다!)은 뱀/파충류에 대해 거의 본능에 가까운 두려움과 혐오감을 갖고 있다. 기독교 문화권의 사람들은 이러한 본능에 더하여 뱀/파충류를 창세기에 기록된 에덴 동산에서의 그 뱀, 그리고 요한 계시록에 '큰 용'이라 언급된 사탄/마귀와 동일시함으로써 더더욱 냉혹한 적대 감정을 노출시키고 있으니(과거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모았던 TV 미니 시리즈 <브이 V>에 등장하는 외계 파충류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독한 적대 감정을 상기해 보라)…. 진화론자들은 물론 이런 종교적 입장과는 전혀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파충류에 대한 선천적인 질시의 감정은 우리 인류의 수억 년 전 포유류 조상, 혹은 수백만 년 전 원시인 조상들이 거대한 용/공룡의 무시무시한 위협에 대해 느꼈을지도 모를 태곳적 기억과 공포감의 계통 발생학적 산물이라는 것(현재는 공룡이 조류나 포유류에 가까운 생리를 갖고 있던 온혈 동물이었으며, 지금의 냉혈 파충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동물이었다는 학설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어쩌면 이러한 용/공룡들로부터의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우리 인류 조상들의 지능의 진화를 더욱 촉진시켰는지도 모른다. 에덴에서의 뱀의 유혹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은 혹시 이에 대한 종교적 은유는 아닐까?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 설명일까? 여하간… 한때 에덴 동산에는 용/에일리언이 살았었으며, 여자(의 후손)/리플리는 이 용/에일리언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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