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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읽어 봐도 너무나 감동적이군. 관객을 존중하는 감독의 저 성실하고 차분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모습. 감격한 나머지 찔끔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소. 난 이 말 한 마디에 완전히 기만당해
장씨와 장씨의 영화라면 무조건 지지해 주기로 결심했지. 장씨의 진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 '이 사람에게 희망을 걸어 보자. 그래도 이 사람은 믿을 수 있겠구나….' 어디 이뿐인 줄 아시오? 철학적이고 이념적인
냄새를 풍기는 장씨의 진지한 면모에서 나는 묘한 동질감까지 느꼈었소. 그런데, 이 고백이 알고 보니 관객을 속이고 농락하기 위한 고도의 '통일 전선 전술'이었을 줄이야.
장씨는 나의 믿음과 신뢰를 철저히 배신했소. 엉터리 고백으로 나의 눈을 흐리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장씨의 영화를 액면 그대로 바라볼 능력을 마비시켜 놓고는 마음껏 사기를 쳤어. 장씨는 한
마디로 말해서 지식인인 척하는, 예술가인 척하는 사기꾼일 뿐이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탈리아의 사기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처럼 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뭔가 심각한 척하려고 가증스럽게 온갖 폼 다 잡다가
마침내 꼬리 잡힌 엉터리에다 속물에다 위선자! 결국 <나쁜 영화>로 말미암아 장씨의 찬란했던 패션 쇼들은 껍데기만 그럴싸한 엉터리 사기극이었음이 만천하에 폭로된 셈이오. 자자, 아직도 늦지 않았소. 하루
속히 자수해서 광명 찾기를 바라오.
뭐요? <나쁜 영화>는 결코 사기가 아니라고? 귀찮게 구구절절이 폭로를 해야 시인을 할 셈이오? 미치겠군. 더러운 거지놈들하고 덜돼먹은 10대 애새끼들이 꼴값하는 걸 적당히 나열만 하면 곧바로 '나쁜'
영화가 되는 줄 아시오? 그걸 무슨 리얼리즘 작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기려 들면 정말 곤란하오. 설마 그 나이에 철없는 애들처럼 멍청하게 카메라의 시선이 현실을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어차피 장씨의 <나쁜 영화>는 진정 '나쁜' 영화일 수 있는 보조 장치의 마련에 완전히 실패한 영화요. 기껏 마련한 보조 장치라는 게 형식상에 있어서의 키치적인/촌스런 실험에나 머물고 있을 뿐.
기존 영화 문법의 형식만 파괴하면 그게 곧 '나쁜' 영화요? 사기치고 있네! 진정 '나쁜' 영화란 -형식과는 상관없이- 흔히 말하는 가치 전복적 사고를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과 파워를 지닌 영화라고 나는 보오. 또한, 진정 '나쁜' 영화란 관객의 구태의연한 사고/가치관을 혁신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진정 '좋은' 영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오. 도대체 가치 전복이라는 게 영화
타이틀에 '나쁜'이나 갖다 붙이고, 천박하게 형식미 파괴 운운 한다고 해서 달성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시오? 박철수를 봐도 그렇거니와 도대체 머리에 든 게 별로 없으니 박씨처럼 지명(知命)을 맞이했거나
장씨처럼 지명을 목전에 둔 소위 중견 감독의 위치에서도 이야기체 영화 찍기에 염증을 느낀다는 둥 새로운 형식미와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둥 "영화를 '만들어 찍는' 조작된 트릭들이 지루해졌다"[<키노>
1997년 8월호, 187쪽]는 둥 헛소리들이나 삑삑 해대고 있지.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나쁜 영화>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한 게 대관절 뭐가 있소?
지가 베르토프식 다큐 기법? 웃기지 마시오. 기존의 좋은(?) 영화들이 보여주는 조작된 재현에 불만을 품고 이를 전복시키기 위해 장씨가 채택한 나쁜 기법이라는 것 역시 조작된 재현을 제시하는 데에
그쳤잖소? 정해진 거 아무 것도 없다고? 없긴 뭐가 없소? 없다고 사기친 거지 정해진 거 다 있었잖소? 감독도, 배우도, 연기도, 시나리오도, 편집도, 음악도 없는 게 없었는데 그게 무슨 다큐야? 이거야말로 아예
처음부터 관객을 속일 작정으로 만들어 찍은 "조작된 트릭"이 아니고 뭐요? 장씨는 역시 사기꾼이야. 설마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개똥같은 사이비 다큐 하나 찍어 내질러 놓은 주제에 -장
보드리야르의 논조를 긁어 와- '나의 작품은 재현의 대상인 현실이 재현에 압도당하여 재현 그 자체/모조품이 곧 현실/진짜가 되어 버린 포스트모던 텍스트다'라는 식의 황당하기 짝이 없는 구라빨 따위로
사기를 치려 들지는 않겠지?
브레히트식 소외/소격 효과? 어휴~ 진부해! 너무 남발되는 통에 지겹기까지 했소. 거기에다 시시한 문자 놀음, 거지 발싸개 같은 키치적 취향의 음악들, 이젠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장씨 영화의
트레이드마크 애니메이션 기법….
이거 다 남들이 써먹다 지겨워서 내다 버린 방법들 아뇨? 이게 뭐가 새로워? 이런 걸 갖고 나와서 나쁜 영화 만들었다고 감히 사기를 쳐? 이 따위로 생각 없이 영화를 만들었으니 자기 영화에 애정을
가질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책임질 생각도 안 했겠지. 그래서 띨빵한 공윤놈들한테 변변한 대항 한 번 안 한 채 제작자 멋대로 당신 필름 짜르게 내버려 둔 것일 거고. 하긴 장씨 본인 말로도 스스로
예술주의와 작가주의에 빠지는 걸 경계하고 제작자의 입장을 존중하는 편이라고 했으니까[<씨네21> 제115호, 26쪽]. 그런데, 자기 작품을 제작자가 마음대로 가위질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게 제작자를 존중해 주는 것이오?
설사 내가 조르쥬 캉길렘이나 미셸 푸코나 장 보드리야르나 베르톨트 브레히트나 게오르그 루카치나 앙드레 바쟁이나 루돌프 아른하임이나 임마누엘 칸트나 플라톤이나 토마스 쿤이나 폴
파이어아벤트나 노베르트 엘리아스나 피에르 부르디외 등등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울 지경인 외국 철학자놈들의 개념을 빌어 와 장씨 영화를 거창하고 형이상학적인 그 무엇으로 치장해 줌으로써 장씨의 사기극에
적극 동참한다 해도 영화가 워낙 후져서 그건 어디까지나 꿈보다 해몽 차원에 머물고 말뿐이외다. 젊은 20대 관객들이 막가는 10대 애새끼들과 게으른 어른 거지놈들의 몰골을 통해, 막 살면 얘네들처럼 깜빵 가거나
거지꼴 난다는 교훈이라도 터득한다면 그나마 다행인 줄 아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배설을 하려거든 화장실에 가서 하길 바라오. 왜 더럽게 관객 면상에다 대고 하려는 거요? 관객이 무슨 장씨 밑이나 닦는 휴지
쪼가린 줄 아시오?
장씨. 끝으로 부탁이 하나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사기를 칠 요량이라면 백남준 할배(이하 백씨)한테 가서 가르침을 좀 청해 보라는 거요. 적어도 백씨는 자신이 사기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밝히고 있는, 장씨보다야 몇 수 위의 사기꾼이니까 말이오. 사기를 치려면 백씨처럼 당당하게 쳐야지. 아니 그렇소? 앞으로는 자신이 사기꾼임을 백씨처럼 떳떳하게
밝혀 양심을 속인 죄의 무거운 중압감으로부터 부디 해방되기를 빌겠소. 그리고, 그럼으로써 일찍이 그대가 얘기했던 대로 "착한 예술가"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겠소[<씨네21> 제48호, 43쪽].
착한 예술가를 지향한다는 사람이 나쁜 영화나 찍고 사기나 쳐서야 어디 되겠소?
마지막으로, 백씨의 어록(?)이나 몇 대목 인용하고 나서 이 지루한 글을 맺을까 하오. 그럼 바빠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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