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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 삐딱하게 보기
역설의 미학 - 천국에 시네마는 없다!

이 글은 원래 1995년 7월 9일, 필자가 회원으로 있던 PC 통신 천리안 영화 동호회 SCREEN의 '생각나는 명화' 게시판에 동일한 제목으로 등록했던 글이다. 문맥을 더 정확히 하기 위해 몇몇 문장을 가감한 것과 맞춤법, 띄어쓰기 손본 것 이외엔 1995년 당시의 글과 여기 싣는 글은 완전히 같다. 지금 읽어 보면 무리하게 논의를 전개시켰다는 느낌도 들고, 또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를 대하는 필자의 태도 역시 5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애착이 가는 글이어서 교정 작업을 거쳐 여기 올리게 됐다. 2000/05/25.

1. 환상의 끝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이 국내에 개봉된 이래 우리는 도처에서 보통명사화 된 시네마 천국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 강남의 신사동에 가면 시네마 천국이라는 극장이 자릴 잡고 있고, PC 통신 하이텔의 영화 동호회 또한 정식 명칭이 시네마 천국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EBS에서 방영되는 영화 교양 프로의 타이틀 역시 시네마 천국이다. 전국의 카페나 커피숍 중 얼마나 많은 곳이 시네마 천국임을 자처하고 있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지경이고…. 과연 시네마 천국은 영화 <시네마 천국>과는 상관 없이 이 시대의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기표 signifiant'의 모범이 되어 버렸다. 찬양받을진저, 포스트모던이여!

이제 영화 <시네마 천국>과는 아무 상관 없이 기호화된 우리의 시네마 천국은 그것이 산출해내는 무수한 이미지들-일부 예를 들자면, 필름 쪼가리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토토의 호기심 어린 얼굴, 알프레도와 토토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행복에 겨워 보이는 듯한 광경, 엔니오 모리코네의 달콤한 음률 등등-의 이미지들에 둘러싸인 끝에 마침내 이에 함몰돼 버렸다. 우리는 우리 문화가,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떤 필연성에 의해 형성해 놓은 <시네마 천국>의 이미지의 이미지만을 자연스럽게 즐기고 소비할 따름이다. 수많은 벽을 장식했거나 장식하고 있을 포스터 쪼가리를 통해서나, 예쁘장한 그림 엽서를 통해서나, 헤드폰으로 흘러나오는 모리코네의 감미로운 음률을 통해서나, 그리고 이런저런 숱한 일상의 생활 속에서. 어디 시네마 천국뿐이겠는가만…. '확대되고 재생산된'(요즘 잘 쓰이는 말 중 하나다) 수많은 이미지들은 결국 이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면서 돌고 돌다가 모두 언젠가는 수채 구멍으로 흘러 들어가게 될 것이 자명하다 (영화 <사이코>의 유명한 샤워실 살인 씬에서, 살해된 자넷 리의 눈물 맺힌 눈동자와 수채 구멍의 디졸브를 연상할 것).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시네마 천국이라는 기표를 통해 연상하는 의미 체계로부터 재생산된 영화 <시네마 천국>은 과연 어떤 것일까? 영화 <시네마 천국>은 우리 대중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영화에 대한 사랑과 애정의 메시지가 담긴 영화/ 영화를 소재로 영화를 얘기한 아름다운 영화/ 영화에 얽힌 잔잔한 감동을 주는 휴먼 드라마/ 과거 TV가 도입되기 전의 순수했던(?) 극장 시대에 대한 향수로 가득찬 영화/ 토토와 알프레도의 우정이 담긴 영화/ 토토와 엘레나의 슬픈 사랑이 담긴 영화/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대개 이상의 것들이 영화 <시네마 천국>에 대한 우리 대중의 일반적인 '편견'이라는 데 대해 심각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대중은 시네마 천국이라는 기표에 대해 하필 이와 같은 연상 작용과 의미 체계를 산출해 냈을까? 이 질문을 만족시킬 만한 주도면밀한 해답을 제시한다는 것은 사실 내 능력 밖의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대로 부분적인 설명을 시도해 볼 수는 있다.

1990년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 별안간 영화와 결부된 소위 담론이 난무하기 시작했을 무렵 <시네마 천국>이 개봉됐다는 점을 주목하자. 그리고 시네마 천국의 '천국 paradiso'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묘한 뉘앙스에 또한 주목해 보자. 내 생각엔 문제의 핵심은 '천국'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되는 이미지에 응축돼 있는 것 같다. 천국? 천진난만, 순진무구, 순수, 사랑, 행복, 충만, 빛, 영롱, 아름다움, 신비… 대충 뭐 이런 것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이러한 이미지들과 우리의 문화적 허영심이 불러일으킨 영화에 대한 장미빛 환상/꿈이 결부됨으로써 시네마 천국이라는 이 멋진 단어는 마침내 영화와 그 주위에 형성된 담론 체계를 상징하는 기호로 사람들 뇌리에 각인돼 버린 것은 아닐까? 사람이란, 천성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되, 도달할 수 없는 이상/유토피아를 동경하는 존재이고 보면 시네마라는 단어와 결합된 '천국'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 대충 짐작은 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영화 <시네마 천국>은 따라서 그 실제 의미하는 바와는 상관 없이 시네마 천국의 의미 체계 속으로 편입해 들어가 버렸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분명한 점은 이 세상에 천국은 없다는 것이다. 또, 개연적인 확실성에 근거해서 말하건대 천국에 시네마가 없으리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왜냐! 시네마라는 건 알고 보면 허깨비 그림자 놀이에 지나지 않으니까. 만약 천국이 실재라면 그 실재 속에 허깨비가 들어앉을 공간은 없다.

영화 <시네마 천국>은 시네마 천국이 만들어낸 찬란한 허상의 왕국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지극히 역설적인 방식으로 이들을 향해 분명 NO!라고 외치고 있다. <시네마 천국>은 사실 우리에게 영화로 인해 망친 인생을 살아간 두 사나이의 슬픈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자명하다. '사람들이여, 너무 영화 좋아하지 말지어다'라는 것. 환상의 끝은 냉혹한 법. 나의 견해(또한 내 친구였던 P 군의 견해이기도 함)에 동의할 수 없다면 어디 한번 차근차근 따져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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