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 삐딱하게 보기 2/3  

2. 영화 <시네마 천국>이 얘기하고 있는 것

복원된 <新시네마 천국>의 등장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이 복원판이 등장함으로써 이전판인 <시네마 천국>에서 비롯된 이미지들의 장난으로부터 어느 정도까지는 해방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하 <신 시네마 천국>을 복원판으로, <시네마 천국>을 이전판으로 명기함. 이 둘 모두를 포괄해서 명기하고자 할 때는 <시네마 천국>으로 함).

이전판이 상영 시간 단축을 이유로 제작자측(나의 추측임)에 의해 마구잡이로 잘려나간 결과 불구가 되어버린 중성적 성격의 '동화'라면, 복원판은 현실이 반영된 성인용 '드라마'다. 이전판에서 커트 처리된 수많은 쇼트와 씬, 시퀀스의 거의 대부분이 성(性)과 관련 있는 부분이라는 점이 밝혀짐으로써 이전판은 거세된 불구와도 같은 작품(그래서 동화가 되어 버린)이라는 사실이 입증된다. 동화에서 직접적인 성의 언급은 언제나 금기시되게 마련이며, 늘 모호하게 상징 언어로 처리된다. 그래서 현실감이 없어지게 되고. 따라서 동화화된 이전판을 본 대부분의 관객들이 <시네마 천국>을 별 부담 없이 중성적인 입장에서, 마치 디즈니 만화 영화 보는 식으로 대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철저한 착각. 결국 <시네마 천국>은 성의 구별이 필요치 않은 천국(신약성경 기록에 근거함), 글자 그대로 천국이 되어 버렸다. 천국의 중성적인 아름다움에 도취된 <시네마 천국>은 인생 또한 온통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추억만으로 점철돼 있다는 낙관적인(동화적인) 메시지로 범벅이 될 수 있었고, 사람들은 그러한 희망 사항을 영화적 낭만과 결부시켜 스스로를 위로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봤을 때 시네마 천국이라는 기표가 산출해 낸 의미 체계의 형성에 이전판이 일종의 내적 요인으로서 기여한 점 또한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여하간 복원판에 근거했을 때 우리는 <시네마 천국>이 결코 천국의 행복이나 영화에 대한 애정, 향수를 구걸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반성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하긴 <시네마 천국>은 희극적인 방식(그래서 심각하지 않은)을 채택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 점에서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는, 그가 만든 다른 영화들을 보지 않은 관계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떤 심각한 성찰을 여과 없이 보여 줌으로써 관객을 괴롭힐 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진 못한 감독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그가 지극히 영화적인 방식으로 영화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 반성은 영화에 등장하는 잡다한 인물상을 통해 비교적 뚜렷하게 형상화되고 있다.

그럼 우선 영화의 중심 무대인 시칠리아 섬의 마을 잔칼도와 그 주민들을 냉정한 시각으로 (삐딱하게) 다시 한 번 바라보기로 하자. 그런 다음, 시각 교정이 이루어진 바탕 하에서 영화의 두 핵심 인물 알프레도와 토토에 대한 평가를 해 보기로 하자.


1) 잔칼도의 극장 'Cinema Paradiso'가 의미하는 것

영화 제목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은 그대로 잔칼도 마을의 극장 이름이기도 하다. 왜 하필 극장을 천국이라고 명명했을까? 다시 한 번 천국의 일반적 이미지를 상기해 보자. 천국은 언제나 행복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곳, 하지만 현실에는 없는 곳. 따라서 '천국 극장'이라는 명칭 속에는 분명 극장이 현실의 괴로움을 잊기 위한 하나의 안식처 혹은 도피처라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이나마 꿈과 희망을 파는 곳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즉, 현실에 세워진 가상의 천국 시뮬라크르(시뮬라크르라는 용어는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 <시뮬라시옹>의 논지에 근거함)인 셈이다. 이 속에서 주민들은 적어도 당분간은 현실을 잊고 환상과 허구의 세계에 푹 빠져들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스타 시스템의 명성이 잔존해 있고, TV가 등장하기 전 곡마단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 시각적 오락이 극장 구경이었던 시대의 영화의 위치를 상상해 보면, 영화의 위력이란 당분간 현실을 잊기 위한 정도의 차원이 아니었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잔칼도 주민들이 영화에 보이는 열광은 극장이 단순한 시뮬라크르가 아닌 가공할 만한 실재로서 주민들의 정신을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이미지들로써 일상을 잊게 만들고 주민들의 혼을 빼앗고 정신을 지배하는 천국이 바로 잔칼도의 시네마 천국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권력 암투의 무대임을 의미한다.


2) 마을 신부(神父)와 복권에 당첨된 나폴리인이 의미하는 것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 한복판에 바티칸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고 있다거나, 과레스키의 동화 같은 소설 <돈 까밀로와 빼뽀네> 정도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탈리아에서 카톨릭이 차지하는 위치를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권력의 한 형태이자 힘의 구심점이라는 사실. 잔칼도의 신부는 카톨릭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된 권력을 의미한다. 신부가 영화 개봉 전 키스씬을 커팅하는 우스꽝스런 검열관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대목은 바로 이 권력의 형상화를 의미하고 있다. 키스씬 커팅을 요구하는 신부의 모습은, 권력이란 것이 사람들의 신체는 물론이고 정신, 심지어 성(sex)이라는 은밀한 영역까지도 지배하려 든다는 미셸 푸코의 지적을 상기하게 만든다. 재미있지 않은가? 시네마 천국이라는 컴컴한 천국에 홀로 앉아 권세를 휘두르는 검열관 신부의 모습이. 천국의 보좌에 앉아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검열관….

영화에서, 종교라는 형태의 권력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본이라는 형태로 바뀐다. 화재로 전소된 '천국 극장'을 인수한 자가 바로 복권에 당첨돼 졸부가 된 나폴리인이라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이제 극장과 영화는 자본의 사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신부로 상징되는 권력은 도덕과 권위와 엄숙미라도 보여 주고 있지만, 나폴리인 졸부로 상징되는 권력에선 천박성 이외엔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천박성은 성의 해방이라는 형태로 금방 가시화되어 나타난다. 극장이 '新시네마 천국'이라는 명칭 하에 개장된 첫날 주민/관객들은, 극장주가 된 나폴리인의 배려로 마침내 지금껏 신부의 검열 때문에 볼 수 없었던 키스씬을 보는 감격을 맛보게 된다. 환호와 함께 요란한 박수 소리가 극장 안을 가득 메우고 새로운 권력의 주체인 졸부 극장주는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이에 답한다. 이제 자본의 권력에 굴복한 신부는 해방된 성을 억압할 능력을 상실했다. 개장된 극장에 성수를 뿌리며 축성해 주거나, 공개된 키스씬을 보며 공포의 감정에 휩싸여 "포르노는 볼 수 없어."라고 중얼거리며 그 자릴 회피하는 게 고작이다. 그간 숱한 키스씬을 혼자 감상해 왔으면서 말이다. 역사적인 억압 기구 중 하나였던 카톨릭 교회의 위선이 지극히 희극적인 형태로 비판을 받고 있는 대목이다. 자본의 힘을 빌어 해방된 성(공개된 키스씬으로 상징됨)은 이제 자본에 의해 상품화되어 버린다. 이미 자본에 철저히 종속된 영화라는 상품을 통해 성은 눈요깃거리로 상품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강도는 점차 강해져 단순한 키스씬으로부터 전라의 풍만한 여체가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단계(브리짓드 바르도로 상징됨)로까지 진행된다. 주민/관객들은 그 상품을 소비하느라 정신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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