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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 삐딱하게 보기 3/3  

3) 잔칼도 주민들이 의미하는 것

지금까지의 논의로써 이제 잔칼도의 주민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료해진다. 영화 이면의 권력/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대중의 형상화라는 것.

<시네마 천국>은 영화에 열광하고 중독된 대중의 어리석음과 무식함과 역겨움을 극장 안팎 주민/관객들의 모습을 통해 끊임없이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극장에 화재가 나던 날 영사실에 있던 알프레도가 극장 밖 문 앞에 모인 채 만석(滿席)이 된 극장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주민들을 바라보며 토토에게 중얼거린 다음의 말에 단적으로 집약돼 있다(비록 역설적이게도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의 '극중 대사'를 그대로 읊조린 것이지만). "군중은 생각이 없어. 뭘 하는지도 모르지."  이러한 발언은 조금 뒤 더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그것은 알프레도가 극장 밖에 모인 주민들 성화에 못 이겨 영상을 극장 밖 광장의 한 집 벽으로 옮겨 영사해 주었을 때 놀라 발코니로 튀어나온 그 집 주인의 발언을 통해 표현된다. 그 때가 밤이어서 자다 깨 나온 듯 보이는 집 주인은 자기집 벽에 영사되고 있는 영화와 이에 열광하는 광장의 주민들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도로 들어가 버린다. "웬 소란들이지? 영화잖아? 바보 천치들!"

극장 안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주민/관객들의 이런저런 황당한 모습을 통해서도 예의 시각은 착실하게 구체화된다. 멜로드라마에 완전히 중독되어 현실인지 허구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어 버린 한 사내는 그 영화를 얼마나 많이 보았던지 아예 극중 대사를 줄줄 외울 지경이다. 그는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극중 인물이 입을 열기도 전에 미리 그 인물이 말할 대사를 읊조리는 우스꽝스런 광경을 연출한다. 브리짓드 바르도의 육체가 스크린에 영사됐을 때 이를 보며 자위 행위를 하다가 들켜 야단맞는 청소년들, 아예 극장 안에서 창녀와 섹스를 하는 성인 남성들 등등…. 영화에 몰입하면 할수록 주민/관객들은 한층 어리석은 상식 밖의 모습들을 연출한다.

잔칼도의 주민 중 이 황홀한 '천국'을 진정으로 싫어하는 사람은 오직 한 명, 잔칼도의 타자(Other)인 광장의 미치광이뿐이다. 오직 이 미치광이만이 모든 권력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는 극장이 화재로 전소됐을 때 모든 주민이 슬퍼했던 것과는 달리 잘 타버렸다고 펄펄 뛰며 좋아했던 유일한 위인이었다. 또한 그는 관객을 완전히 몰입시켜 바보로 만드는 멜로드라마를 보고 나서 맘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냈던 유일한 인물이었으며, 반대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非멜로드라마성 영화를 보고 나서 모든 관객이 재미 없다며 돈 돌려달라고 성화할 때 유일하게 "맘에 꼭 드는 영화야!"라고 소리지르는 일탈 행위를 보인다. 그의 타자로서의 이러한 일탈 행위는 대중의 어리석음과 대비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로 볼 수도 있다.


4) 알프레도와 토토

이 두 사람의 상황도 잔칼도 주민들의 그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어떤 의미에선 주민들보다 훨씬 더 영화에 깊이 중독된 인물들이 바로 이들이다. 두 사람 모두 거의 평생을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살았으니까. 상기해 보라! 알프레도의 경우는 10살 때부터 영사기를 돌렸으며 끝내는 영사기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소경이 된 케이스고, 토토의 경우 역시 영사 기사로 일하다가 아예 영화 감독으로 전업한 케이스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영화로 인해 인생을 망쳤다는 것.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영화라는 허구의 세계에 너무나 깊이 매몰돼 있어 현실에 대한 심각한 성찰을 하는 데는 결국 한계를 드러내며, 또 같은 이유로 현실에서는 결코 행복을 찾지 못한다.

우선 그들은 고독하다. 알프레도는 두 번이나 결혼을 했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다. 그나마 토토가 자식 역할을 해 주지만 결국 남이다. 토토의 경우엔 자식뿐 아니라 부인마저 없다. 그는 비록 영화 감독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만, 첫사랑의 실패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하는 독신남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 여자 저 여자 품을 전전하지만 결코 결혼을 할 수 없는 처지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지극히 비관적이다. 알프레도는 영사 기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싫어한다. 그래서 어린 토토가 영사기 돌리는 일을 배우겠다고 졸라도 처음엔 단호히 거절한다. 후에 어쩔 수 없이 영사 기사 일을 가르치게 된 뒤에도 쉴새없이 토토에게 자신의 직업이나 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충고를 한다. 그는 토토가 자신의 전철을 밟을까 봐 늘 전전긍긍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강박적 사고/집착으로 인해 토토는 도리어 불행해지고 만다. 토토 역시 비관적이긴 마찬가지다.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마침내 영화 감독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처럼 영화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다. 어떤 의미에서 영화란 그에게 있어 현실에 대한 쓸쓸한 그림자 놀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알프레도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30년만에 처음으로 고향에 돌아온 그가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자기 조카들에게 해 준 말은, 자신의 직업을 그가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잘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속은 텅 비었지."

이렇듯 그들이 비관적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에게 현실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알프레도에겐 현실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있다. 그는 인생이 결코 영화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영화가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토토에게 현실의 어려움을 일깨워 주려고 갖은 애를 다 쓴다. 하지만 그에겐 한계가 있다. 그는 영화라는 가상의 세계에 자기도 모르는 새 너무나 깊숙이 중독돼 있는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해야 토토에게 현실을 일깨워 준다면서 중요한 의미가 담긴 말을 영화 대사로 대신해 버린다든가 혹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토토에게 영화를 삶의 현실로 강요해 버리고 마는 -토토는 결국 영화 감독이 됐지 않은가?- 따위다. 어느 면으로 보나 그는 영화로 인해 보상받은 게 없다. 심지어 그는 영화로 인해 두 눈마저 잃었다. 나아가 영화에 대한 집착으로 아들과 같은 토토를 멀리 떠나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이 점, 복원판에 확실하게 그려진다). 오직 관객의 입장에서 듣고 바라본다는 식의 영화적 간접 체험에 익숙한 알프레도에게 이제 토토는 직접 대하기가 버거운 상대다. 그래서 그는 감독으로 성공한 토토가 만든 영화나 신문 기사, 들리는 풍문에 의해서만 토토를 상대할 뿐이다. 그게 그에겐 더 수월하고 신나는 일인 것이다.

토토 역시 알게 모르게 영화적인 삶의 방식에 중독돼 있음은 마찬가지다. 첫사랑의 실패로 그 후 30년이라는 껍데기 인생을 살아온 토토(이는 그의 첫사랑 엘레나도 마찬가지다)는 마침내 엘레나와의 재회를 통해 사랑을 재확인하지만, 지난 세월을 줄곧 영화와 함께 살아왔던 감독 토토에게는 결코 현실의 사랑을 영화의 해피엔딩식으로 이끌어 나갈 능력이 없다. 영화는 분명 현실과 다른 것이다. 토토에게 있어 현재(로마/꿈/영화)는 곧 허구이고, 과거(잔칼도/기억/현실)는 곧 실재다. 허구와 실재가 혼재돼 있는 토토에게 현실적인 사랑의 결실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엘레나와의 재회를 통한 사랑의 결실은 현실이 아닌 셀룰로이드상의 영상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 토토는 결국 알프레도와 영화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한다. 알프레도가 남긴 유품-키스씬이 담긴 낡은 셀룰로이드 필름 뭉치가 스크린에 영사되면서 토토의 사랑은 다시 영화로 환원되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키스씬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놀이로…. 라스트 시퀸스에서 토토가 흘린 눈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감동? 노스탤지어? 회한?


3. 맺음말

시네마 천국이라는 기표는 이미 시뮬라크르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를 기표라고 얘기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이미지들은 그 근거를 상실한 채 이미지 자체로 독립적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영화 <시네마 천국>이라는 근거에 의거한 해석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이제 해석은 해석의 대상인 근거가 필요 없이 해석 자체로 이미 자기 충족적이다. 난 그럼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토록 골머리 앓아가며 '계몽'을 위한 쓸데없는 해석 작업에 매달렸다는 말인가? 계몽에 대한 열망이라는 것도 결국은 자기 충족적/자기 만족적/이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시네마 천국>은 시뮬라크르들을 저주하는 영화다. 영화 자체가 일종의 시뮬라크르이고 보면, 시뮬라크르로서의 영화 <시네마 천국>이 또 다른 시뮬라크르들(영화를 포함해서)에 대해 거부의 입장을 보인다는 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일인가?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는 그렇다면 성상(聖像) 파괴주의자란 말인가? 아무튼 이런 의미에서 시뮬라크르 <시네마 천국>은 우습게도 계몽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계몽인가? 그것은 '사람들이여, 영화 탐닉하지 말거라'라는 것. 그 어느 것이든 지나치게 빠져들어서 좋을 건 없지만, 이는 영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시네마 천국>은 냉정하게 얘기한다. 영화 너무 많이 보면 현실 감각을 상실하고, 멍청해지고, 사랑에도 인생에도 실패하고, 심지어 알프레도처럼 불구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따라서 영화광이나 매니아임을 자처한다는 건 대단히 어리석고 위험한 짓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영화라는 매체에 애정과 관심을 갖는 것은 좋다.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어선 곤란하다! 이제 난 <시네마 천국>이 주는 이 심오한 메시지를 겸허히 받아들여 당분간 영화계(?)를 떠나려고 한다. 아듀~~ 시네마 천국이여.

끝으로 한 마디만 더! <시네마 천국>은 명화/걸작의 기준에 부합되는 영화인가? 글쎄… 잘 모르겠다. 그럼 왜 이 게시판(PC 통신 천리안 영화 동호회 'SCREEN'의 '생각나는 명화' 게시판을 말함)에 글을 올린 거지? 글쎄… 계몽적 차원에서라고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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