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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가족 The Quiet Family> 씹어 주기 1/3  
<조용한 가족> 씹어 주기

이 글은 1998년 5월, 웹진영화 제8호의 ISSUE FILM 섹션에 위와 동일한 제목으로 실었던 것이다. 당시 ISSUE FILM 섹션 편집 방침에 의거하여 필자는 '본의 아니게' <조용한 가족>을 무조건 씹어 주는 일종의 악역을 맡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해서 본 글은 필요 이상으로 비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모쪼록 이 점 감안하여 읽어 주시기 바란다. 그렇다고 <조용한 가족>이 잘 된 영화라는 얘기는 아니다. 필자는 지금도 여전히 <조용한 가족>을 그렇고 그런 영화들 중 하나로 보고 있다. 2000/07/30.

0. 영화에 대한 이른바 20자평 감상 먼저…

<조용한 가족>. 조용히 보고 나서 조용히 뛰쳐나오면 된다.


1. 우선 관객님들부터 한번 씹어 보자

본격적으로 영화님과 감독님을 씹어 드리기 전에 -준비 운동 한다는 의미에서- <조용한 가족>을 보며 박장대소(拍掌大笑)하신 우리의 고매한 관객 나으리들부터 씹어 드리기로 하자.

우리 나라의 영화 관객들 역시 군중이라는 점에선 본질적으로 다른 나라의 영화 관객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 그러나… 후진국 인민들이라는 사실이 그토록이나 자랑스러운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밑바닥 교양 수준을 거리낌 없이 노출시키는 그 덜떨어진 양태를 목도할 때면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낌과 동시에 확실한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차라리 저 멀리 남극의 펭귄으로나 태어났더라면 더럽게 이 꼴 저 꼴 안 보고 한평생 유유자적 살아갈 수 있었으련만…. 위대한 파산국 대한 민국의 국가 수준이라는 게 하도 거지 발싸개 같다 보니 그 인민들의 행동거지들 역시 거지들 모양 덜돼먹었음은 자명한 이치이겠으나, 아무튼 우루루 몰려다니는 거지떼처럼 짜증나고 불쾌한 대한 민국 인민들의 대중으로서의 군중 심리가 극장 안에서도 아무런 여과 없이 고스란히 드러날 때마다 나는 도무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위대한 조선의 후예들을 향해 똥침을 수만 방 갈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역겹고 더럽기 짝이 없는 거지 발싸개 같은 거지 새끼들! 남들이 하면 개나 소나 할 것 없이 모조리 엉겨 붙어 발광이라도 하듯 그거 따라 하기에 급급한 똥거지 새끼들! 남들 웃으면 미친 듯 따라 웃고, 남들 울면 미친 듯 따라 울고, 남들 PCS폰 사면 자기도 미친 듯 사서 허리춤에 꽂고 다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꺼내어 거기다 주둥이 들이밀고는 정신 없이 씨부렁거리기에 바쁜 거지 코딱지 같은 새끼들! 극장 안이 무슨 PCS폰 통화 경연 대회장이라도 되는 줄 아는가, 이 개 발싸개 같은 개새끼들이여!

근래 이른바 新유교주의자들(국내에서 1980년대 이후로 터무니없이 세력을 넓혀 가고 있는 짜증나는 무리들. 인간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위 군자를 양성한다는 명목 하에 전 인민을 집단화하려는 악랄한 음모를 획책 중인 극히 위험한 불순 세력임)이 후진국 인민들에게서 흔히 목격되는 이러한 천박하고 상스러운 '내 맘대로주의' 혹은 '내 멋대로주의' 혹은 '나 꼴리는대로주의'를 극단적 개인주의라느니 어쩌니 하면서 마치 개인주의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개인주의를 싸잡아 매도하고 있는데, 이는 심히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타인'을 배제한 개인주의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에 투철한 사람들은 언제나 타인을 의식한다. 개인주의는 작금 우리 나라에 만연해 있는 '내 맘대로주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나는 어쨌거나 거룩하고 숭고한 유교 사회와 유교 이상국을 꿈꾸는 신 유교주의자들(이들은 언제나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한다)이 최고의 악덕 중 하나로 경계하는 개인주의의 철저한 신봉자이므로 집단적 성향을 띠는 그 어떠한 것에도 노골적인 반감을 품고 있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 극장에서의 영화 보기란 비록 극장이라는 공간의 공적(公的) 성격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사적(私的) 관조'라는 한계를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까 재미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재미일 뿐이요, 재미없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재미없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래로 그저 두루뭉실 어울려 노는 걸 미덕 같지도 않은 미덕으로 알고 있는 우리 나라 사람들로서는(바로 이 점이야말로 신 유교주의자들의 시대착오적 주장이 먹혀들어갈 수 있는 주요 근거가 된다), 게다가 극장 가서 영화 보기가 아직도 하나의 이벤트이자 축제 수준에 머물고 있을 따름인 우리 나라 관객들로서는 '영화 보기란 사적 관조다'라는 식의 관점이 오히려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긴… 예로부터 놀아도 한데 어울려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해 대야 직성이 풀렸고, 교회 가서 기도를 해도 같이 울부짖고 같이 꽥꽥 고함을 질러 대야 분이 풀리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고 보면 극장 안의 관객들마저 같은 영화를 보면서 같은 느낌을 공유해야 하고, 같이 즐거워해야 하고, 같이 슬퍼해야 하는 게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의심의 여지 없이 집단의 가치가 최우선시되는 우리 나라, 집단의 논리 뿐 아니라 집단의 감정까지도 공유당해야만 하는 우리 나라, 과연 좋은 나라인가?

<조용한 가족> 개봉 당일, 한 개봉관에서 나는 영화 보는 걸 무슨 엄청난 문화적 경험이라도 하는 것인 양 착각하는 상당수 단순-무식-과격하고 속된 저질 관객들(개봉일에 이러한 부류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유행에 민감한 저급 속물들 말이다. 속물에도 엄연히 위계 질서가 존재한다. 고급과 저급. 고급 속물들은 저급 속물들이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위세와 품위를 갖추고 있다. 최근 들어 알게 된 사실이다)에 둘러싸인 채 그들의 부화뇌동(附和雷同)과 집단 발작 증세로 말미암아 영화 보기에 상당한 애로를 느껴야만 했다. 물론 관객들이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재밌어 하며 낄낄거리는 걸 내가 뭐라 탓할 수야 없겠지. 그러나!! 그러나!!!! 영화 개봉도 전에 벌써 '코믹 잔혹극'이라는 괴이한 선전 공세에 완전히 세뇌당해 버린 저질 관객들이, 그렇고 그런 영화 한 편에 보여 준 거의 발악에 가까운 웃음 공세에 나는 진실로 진실로 몸서리가 쳐지지 않을 수 없었다. '코믹' 잔혹극이니까 당연히 웃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아무 때나 강박적으로 웃음을 남발하는 우리 나라 관객들의 후진적 모습들. 이에 기가 막혀 버린 나는 정작 웃어야 할 대목에서 웃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집단의 우매함에 대한 분노와 짜증, 그리고 존재들의 경박함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라는 것.

다른 어느 사회보다도 획일적인, 그래서 집단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우리 사회(이는 다음의 단 두 마디로도 간단히 입증된다. 회식 자리에서 건배하면서 외치는 구호. "우리가! 남이가!")의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풍토는 다양하면서도 진득한 문화 경험을 애당초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관객들을 새 영화 정보 얻기에나 급급한 머저리 밥통으로 만들고 있다. 위대한 후진국 대한 민국에서는 지금 문화에 대한 끓어 넘치는 욕구와 그 소비 방식 간에 완벽한 불협화음이 울려 퍼지고 있는 가운데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문화 미숙아들이 대량 배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미숙아들은 역시 미숙아들답게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그저 쌓아 두기만 할 뿐 돌아볼 능력이 결여돼 있는 고로 조금만 새로운 영화다 싶으면 금방 거기에 압도당해 버리는 무면역성을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영화/문화에 대한 성찰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무지막지한 소비만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더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 미숙아들이 순전히 후진국에서 태어났다는 원죄로 인해 다양한 영양소를 공급받지 못하고 영양 실조 상태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 그 결과 이들은 충분한 대뇌 피질 발육이 이루어지지 못한 탓에 인간으로서 필히 갖추어야 할 고등 사고 기능은 결핍돼 있고 대뇌 변연계의 억제되지 못한 온갖 욕구들만 과잉으로 넘쳐나는 저급 속물로서 성장을 마치게 된다. 속물 중에서도 저급에 속하는 속물들에게 있어 영화 보기란 질보다 양이다. 그러니까 영화를 많이 봤다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다. 영화를 많이 봤다는 사실 자체로써 소중한 문화 경험을 했다는 뿌듯함과 벅찬 감동을 느낄 뿐 거기에는 어떠한 사고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고의 진공 상태. 그래서 이들 사고할 줄 모르는 저급 속물들에게 있어서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는 대단히 유용한 것이 된다. 이를테면 <조용한 가족>의 경우엔 이런 식이다. '무서우면서도 웃긴다더라. 그으래? 그럼 웃겨도 희한하게 웃겨 주겠구나! 희한하게 웃겨 주는 거 보러 가자아! 우루루루루루루~~~' 송강호의 출연은 이들에게 더더욱 확실한 믿음을 심어 준다. 송강호의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연기에 얼마간 짜증이 났던 나와는 정반대로 관객들은 송강호만 나왔다 하면 사정없이 웃어제낀다. 말이 필요 없다. 어떠한 논리도 필요 없다. 그냥 웃어 주면 된다. 왜냐고? 웃기니까! 그러니 웃자, 웃어. 한 번만 더 웃어 보자꾸나! 하긴… 관객들은 동일한 얘기의 변칙들을 계속 즐기려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고 보면(그래서 끝없이 속편들이 제작되는 것이겠지만) 송강호의 소위 '넘버 3'식 연기는 오히려 관객들이 기대해 마지않던 요소였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렇게 무식한 관객들이 아무 대목에서나 마구잡이로 미친년 방구 뀌듯이 웃어 대고 앉았으니 혹시 이 꼴을 본 감독이랑 스태프진이랑 제작사 측은 즈그들이 영화 무지무지하게 잘 만든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그 엄청난 착각의 기반 위에 서서 앞으로도 계속하여 이처럼 짜증나는 수준의 영화들을 양산해 낼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대적인 선전 공세를 앞세운 채. 결국 우리 한국 영화는 관객이라는 이름의 문화 미숙아들과 저급 속물들의 눈높이에 걸맞은 하향 평준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후진국 영화는 역시 후진국 수준일 수밖에 없음이야'라는 오명을 세계 만방에 떨치게 되겠지? 그 주제에 대종상이니 뭐니 하면서 즈그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꼴같잖은 꼴값은 있는 대로 다 떨 것이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여기에까지 이르게 되자 나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한산섬 달 밝은 밤의 이순신 장군처럼 애가 끊어지는 듯한 참담한 지경에 도달하게 되었다. 어허~ 이거 참 큰일났네~~ 안 그래도 재미없는 한국 영화가 더더욱 재미없어진다?

관객이 똑똑해야 한국 영화도 재미있어진다. 그러니 관객들이여, 제발 아무 때나 미친 듯이 웃지 마시오. 부탁이오! 웃길 때만 웃으시오. 괜히 감독 헛갈려 우쭐거리게 만들지 말고 부디 웃길 때만 웃어 주시오. 남들 웃는다고 그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 때나 따라 웃지 좀 말고! 끝으로, 개인은 집단에 선행함을 또한 명심해 주기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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