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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 이젠 영화님과 감독님을 씹어 드리자.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 <조용한 가족>! '코믹 잔혹극'이라는 요상한 선전 공세로 문화 미숙아들과 저급 속물들의 왕성한 호기심을 자극한 덕분에 다행히 흥행에는 성공했다고 하니 김지운 감독은
차기작 만드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다. 좋겠다, 김지운 감독은. 그러나 착각하지 마시라. 코믹과 잔혹 양쪽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그 기준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마무리됐다는 것이 본인의
총평이니까.
개인적으로 영화와 감독에 대한 불만은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영화 자체가 별로 재미없었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감독이 이런저런 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 영화에
대해 변명하고 있다는 거다.
1) 우선 영화 자체에 대해 씹어 보자. <조용한 가족>은 별로 재미가 없다. 그저 그렇다.
보고 나면 시시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무지무지 웃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지무지 잔인한 영상으로 쇼크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대단히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도 아니고….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코믹과 잔혹이 영화 속에 똑같이 들어 있다고 우기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어설프게 웃기고 어설프게 잔인한 척하다가 어설프게 끝나 버릴 뿐이다. 이게 감독이 의도한 바로 그 "촌스러운
토종 블랙 코미디"의 결과물이라면 글쎄… 감독의 주장에 동의해 줄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영화가 죽도 밥도 아니게 된 것은 감독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다. 완전히 이질적인 요소인 코믹과 잔혹을 한꺼번에 다루기도 벅찬 판에 상징성과 사실성 양쪽 모두를 한 영화에
담아 보려는 과욕을 부렸다는 것.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아담스 패밀리>와 코엔 형제의 <파고>(1996)를 예로 들어 가면서 자신의 영화가 이들 두 영화로 대변되는 지극히 상반되는 두 요소, 곧 상징성과
사실성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왔다 갔다 했다"고 자평하고 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자평일 뿐이고 내가 보기엔 양 요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차라리 타협점을 찾아 어느 한쪽
방향으로만 밀고 나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아담스 패밀리> 스타일로 밀고 나간다면 제작비가 대폭 상승한다는 부담과 함께 유치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위험성이 있을 테고, 반대로 <파고>
스타일로 밀고 나간다면 제작비는 적게 들겠지만 다른 여타 한국 영화들처럼 몰개성적인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는 위험성이 있을 테지만, 그래도 이렇게 단일 노선을 취할 경우 감독의 능력 여하에 따라
코믹과 잔혹이 지금과 같은 어색함과 부자연스러움 없이 어느 한쪽으로만 적절히 녹아 들어갈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상징성과 사실성과 코믹과 잔혹을 몽땅 한 영화에 집어넣으려는 감독의 지나친 욕심-혹은
지나친 타협-으로 인해 이 혼성 장르적 성격의 영화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처럼 상징적 효과도 사실적 효과도 코미디 효과도 호러 효과도 모두모두 상쇄돼 버리는 결과에 봉착하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조용한 가족>이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상황과 캐릭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아담스 패밀리> 같은 식의 상징성을 추구했어야 옳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담스 패밀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상징성은 그 상징성을 드러내는 작업이 잘만 이루어진다면 사실주의 영화에서보다 훨씬 용이하고 재미있게 코믹과 잔혹 양쪽 모두를, 그것도 부담
없이(어차피 가짜라는 걸 기정사실화하고 들어가니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관객은 그 속에서 고도의 상징적 의미를 읽을 수 있는 보너스까지 얻을 수 있다. 그랬더라면 감독이
굳이 인터뷰에서 "고도의 계산으로 퍼즐처럼 만든 지적 게임이 아니고 촌스럽게 만든 토종 블랙 코미디다"라느니 "사건 전체를 말끔하게 정돈하지 않은 것도 의도한 거다"라느니 "그냥 인생의
부조리함과 폭력성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것을 블랙 코미디로 풀어보고 싶었던 것이다"라느니 하는 등의 궁색한 변명을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불만인 것은 이 영화가 '쓸데없이' 잔인하다는 점이다. 나는 호러 영화의 잔인성에 관한 한 이골난
사람이지만, 이 영화의 시체 처리 방식과 묘사 방식에는 별로 공감이 가질 않는다. 즉, 극의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고 과장돼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니까 어떤 합목적적인
장치를 깐 상태에서의 잔인이라면 그 잔인의 수준이 설사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도 기꺼이 봐 줄 용의가 있겠는데, 이 영화에서의 잔인은 그런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의 불필요한 잔인일 뿐이라는 거다. 그래서 '쓸데없이'
잔인하다는 거고…. 감독이 잡지들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우연성과 공시성(共時性)을 내포하는 '데드존'의 개념이라든가 부조리의 개념이라든가 그 부조리한 상황 가운데서 가족을 연민의 대상으로서 구원하고
싶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이러한 소모적 잔인성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가령 <텍사스 살인마>(1974)의 경우 영화가 갖는 사실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내재해 있는 계급의 정치학이라는 장치로 인해 그
잔인성이 합목적성을 부여받고 있고, 클라이브 바커의 <헬레이저> 4부작 중 특히 3부나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1992) 같은 경우 이들 영화가 갖는 성과 욕망의 정치학이라는 장치에 의해 그 무지막지한
피바다 집단 살인극이 합목적성 나아가 정당성까지 부여받고 있음에 비해 <조용한 가족>의 경우엔 -감독의 말마따나 그저 엉성하고 촌스럽게 만든 영화이다 보니- 자살과 살인과 시체 유기
등 모든 엽기적인 연출이 그저 관객의 시체 관음증이나 유발시키고 관객의 금지된 것에 대한 욕구나 자극하는 차원, 곧 '노출을 위한 노출의 상태'에 머물고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잔인성의 시각적 묘사 수준에 있어서는 차라리, 호러에 흥미를 느끼고 입장했을 여러 관객들의 호기심과 공포를 충족시켜 주는 선까지 과감하게 밀고 나갔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서울에선 라스 폰 트리에의 <킹덤>(1994)에 보여 준 이상 열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호러 영화에 대한 문화 미숙아들과 저급 속물들의 관심이 한창 고조되고 있는 바, 아예 그 고조된 관심에
편승하여 자극적이면서 강력한 시각적 묘사를 이끌어 냈더라면 김지운 감독은 일부 관객층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의미에서 감독 자신에겐 이러한 소수의 열렬한 지지자가 더 절실할지도
모른다. 확실한 우군(友軍) 말이다. 우리의 감독들 중 소수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감독이 과연 있는가? 각설하고… 그런 대로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용한 가족>은 지금 한국에서
확산돼 나가고 있는 청년 관객층의 호러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직까지는 그 호기심이란 게 사회적으로 금지되고
억압된 것들에 대한 실행 욕구를 호러 영화의 극단적인 영상들을 엿봄으로써 시각적으로나마 잠시 해소해 보겠다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러의 가치 전복적인 정치성과 철학성을 논한다는 것은 우리
나라에선 아직도 여전히 시기 상조다. 이런 점에서 <조용한 가족>에 등장하는 조용한 가족들의 그 어설프게 잔인하고 어설프게 치밀하고 어설프게 멍청하고 그래서 어설프게 웃기는 수준이야말로 곧
역설적이게도 우리 나라 호러 관객층의 실태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에 해당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아직은 어설프기만 한 천민 자본주의 사회 한국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2) 이제는 감독에 대한 불만을 토로해 보기로 하자. 우리 나라 감독님들은 -말투 자체가 어눌한 임권택 감독은 일단 열외로 치고- 대체로 영화 만들기보다는
자신이 만든 영화에 대한 변명에 더 능숙하신 것 같다. 김지운 감독도 예외는 아닌 듯 각종 인터뷰에서 자신의 데뷔작에 대해 그럴듯한 변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영화는 그 변명의 내용처럼 성공적으로
감독의 사고를 담아내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감독에 대한 나의 가장 큰 불만은 각종 인터뷰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자신의 영화에 대한 면죄부를 발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일부러' 어설프고 엉성하게 만들었으니 쓸데없이 토를 달지
말라는 것. 가령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건 전체를 말끔하게 정돈하지 않은 것도 의도한 거다. …후반부가 약하다든가 결말이 이상하다 그런 것들은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는 자신의 영화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의도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발언들이다. 못 만든 것을 굳이 이런 식으로 변명할 필요가 있는가?
아무튼, 영화가 감독의 사고를 드러내기엔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이 감독의 인터뷰 내용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사고에 영화 전체를 꿰뚫는 어떤 일관된 흐름이 없다는 점 또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감독은 인터뷰 상에서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개념들을 동원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 개념들은 영화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각각 따로따로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타이틀 자체에 '가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며, 또 주인공들이 가족이라는 하나의 '집단'임에도 감독의 발언
어디에서고 가족이라는 집단에 대한 진지한 천착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감독은 자신이 직접 언급한 영화들인 <샤이닝>이나 <아담스 패밀리>에서 도대체 뭘 본 것인지 모르겠다.
그냥 그림만 보고 앉아 있었나? 이 두 영화에서 가족에 관한 몇 가지 아이디어만 따와 적당히 뒤섞어 만들었어도 <조용한 가족>보다는 나은 작품이 하나 탄생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차피 여러 장르를
얼버무린 짬뽕 영화이니만큼 감독이 자신의 그 독창적(?) 개념들에 너무 집착함 없이 각각의 장르의 속성이나 그 주변을 횡행하는 담론들을 끌어모아 이를 살짝 비트는 묘미만 발휘했더라도 훨씬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전개상 가족의 '배타성'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어야 했다. 이것이 전제가 됐을 때 비로소 산장이라는 공간과 강릉 무장 공비 잠수함 침투 사건과 라스트 시퀀스에서 보인
가족의 기이한 행동이 서로 유기적인 연관을 맺을 수 있게 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가족의 '우리'로서의 배타성을 가족 이기주의와 연결시킨 다음 그 이기적 배타성을 외딴 산장의 폐쇄 공간이 가져다 주는
긴장감을 이용하여 대한 민국의 사상적 폐쇄성과 연결시킴으로써 영화 전체에 정치적 함의를 깔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대한 민국을 침범한 무장 공비들은 나-우리-가족의 배타적 공간인 산장을
찾아드는 손님-방문객과 유비 관계를 이룰 수 있게 되며, 이렇게 해서 손님/공비(너-그들)는 가족/대한 민국 국민(나-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절대 타자로서 온 가족/온
국민이 힘을 합쳐 퇴치해야만 할 공동의 적으로서의 위치를 자연스레 점할 수 있게 된다. 영화 내내 삽입된 강릉 무장 공비 잠수함 침투 사건에 대한 TV 뉴스 보도 클립들은 이러한 의도로 삽입된 게 아니라면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연출이다. 라스트 시퀀스에서 보여 준 가족의 기이한 행동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가족의 배타적 공간을 위협하는 외부의 적에 대한 경계의 몸짓이라는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절정에 이른 가족의 이기적 배타성이 그들로 하여금 손님을 손님이 아닌 숨죽이고 경계해야만 하는 낯설고 두려운 타자로 여기게끔 만들고 있다는 것. 이러한 기반 위에서 인간의 적당히 선하고 적당히 악하고
적당히 비겁하고 적당히 나약한 일면들을 풍자적으로 묘사해 나가면서 호러와 코미디의 요소들을 도입했더라면?
그러나 정작 감독의 자기 영화에 대한 설명은 어떠한가? 도대체가 유기적인 연계가 전혀 없다. 모든 게 각자 따로따로 논다. 가족 구성원은 모두 주류 질서에서 일탈한 아웃사이더이고 손님들은
이들을 향한 주류 세력의 집요한 추적과 공격을 의미한다. 이상 끝! 산장의 공간적 구도는 <샤이닝>을 참조했으며, 그 공간적 의미는 이른바 '데드존' 개념에 의거한다. 데드존이란
"변증법적으로 모순이 극대화되었을 때 양질 전화의 법칙처럼 어느 순간, 어느 지점 시공이 딱 맞아 떨어졌을 때 모순이" 폭발되는 지점을 의미하며, 데드존인 산장에 무수한 삶이 "외부의 모순을 안고
통과할 때 그 모순이 이곳에서 폭발한다는 그런 설정을 했다." 이상 끝! 무장 공비 사건을 끌어들인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영민(송강호 분)이 병원으로 실려가 TV를
보다가 "자기가 암매장한 시체가 간첩으로 오인되는 것을 보고" 폭소를 터뜨리는 대목에 사용하기 위해서였지만, 그 이면에는 조작된 것일지도 모를 무장 공비 사건에 대한 "집단적 공포감"을
조롱한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이상 끝! 이 영화는 추리물도 스릴러물도 아니다. 그냥 인생의 부조리함과 고단함과 폭력성 따위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풀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상
끝!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렇게 따로따로 노는 파편화된 개념들이 영화를 보면서 감지라도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감독이 언급한 이 개념들을 하나도 눈치채지 못했다. 영화에
감독 자신의 생각을 심는 데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5. 끝으로…
요즘 들어 나는 감독보다는 영화 자체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영화가 담고 있는 얘기와 그것이 의미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가에 더 관심을 집중시킨다. 어떤 감독이 만들었다더라에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영화 보기란 결국은 관객 자신의 처지와 입장과 세계관의 투영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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