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y
 on PHILOSOPHY <친구> 2002년 후기 - 3/3  

각설하고, 지식인됨이란 종국엔 한 가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항상 비판적 자기 성찰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한몸에 구현하고 있는 자기는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사회까지도 비판할 수 있는 양심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 물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지식인 종언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근대적 의미의 계몽적 혹은 입법적 지식인 모델이 탈근대와 근대가 혼재하고 있는 대한 민국의 현실 앞에서 더 이상 본래의 설득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음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변함없이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의무가 남아 있다.

"지식인의 참모습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진실을 위해 불의에 항거하고, 타협하지 않는 자세라고 말하고 싶다. 지식인의 길은 마치 도달하기 힘든 예술을 구현하는 것과 같다. 물론 그 길은 어렵고도 힘들다. 이제부터라도 노력해 보자."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아랍계 미국인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이다. 사이드는 그리고 그 항거의 방법론으로서 "지식인들이 가능한 한 다양한 방식의 강단(또는 무대, 스위프트의 표현을 빌자면 순회 공연)을 통해 자신의 깨어있는 의지를 알리고 논쟁을 공론화해야 한다"라고 얘기한다. 이것이 사르트르가 말한 지식인의 앙가주망, 즉 사회 참여의 가장 중요한 한 양식일 것이고, 이러한 비판적 위치를 망각하거나 포기한다면 그는 더 이상 지식인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사회를 향한 자신의 발언대를 확보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비판적 지식인들을 진심으로 존중해 줄 수밖에 없다. 10년 넘게 백혈병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냉정으로 각종 매체에서 서구와 지식인 사회 비판을 지속하고 있는 에드워드 사이드는 물론이고, 칠순이 넘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이라는 신매체를 통해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노암 촘스키, 대중으로부터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면서도 이 대중의 눈먼 복수에 괘념치 않고 자신이 직접 창간한 잡지를 통해 한국 사회의 숱한 하수구들을 정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강준만, 그리고 우리 시대의 지적 광대이자 우리 시대의 라블레로서 자신이 확보한 무대라면 그 어디에서든 사람들에게 날카롭지만 즐거운 웃음을 선사하는 데 인색치 않은 진중권…. 하긴 이들도 제각각 인간적 약점이나 단점이라는 것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들은 최소한 생각과 행동이 서로 분열을 일으키는 일 없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결국 이들의 행적을 지켜보면서 나는 또다시 사르트르의 "지식인은 고독하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누구로부터 위임장을 받은 일도 없고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자리를 배당받은 적이 없는" 이들 지식인은 자기가 깨달은 것들을 사회에 증언하기 위해 스스로 짊어진 노역을 개인 홀로 묵묵히 감내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쨌든 지식인은 지적으로 매우 성실해야 한다. 지적 성실을 담보로 하지 않은 비판은 한낱 겉치레 쇼에 불과한 것이다. 비판의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진지한 탐구 과정과 이를 통해 얻어진 명료한 인식 없이 이루어지는 비판은, 비판이 아니라 네트를 떠도는 수많은 괴물들의 허장성세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요컨대, 지식인에게는 비판 이전에 지속적인 자기 성찰 과정을 통한 깨달음이 있어야 하고, 그 깨달음을 지탱해 줄 수 있는 학문적 노력이 있어야 하며, 그러한 노력을 유지하기 위한 지적 성실함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것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결여돼 있다면 그는 설사 투철한 이념으로 무장하고 있다 하더라도, 설사 엄청난 학문적 성과를 자랑한다 하더라도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위치에 설 수 없다. 다시 말해 지식인이 아니다.

사실 지식인의 비판 작업, 즉 양비론이라는 안락한 구유에 자리보전하여 눕지 않고, 단순한 호오(好惡)의 감정 상태나 흑백 논리의 편협에 빠지지 않고,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정확히 판단하여 시시비비를 가림으로써 정치적 올바름을 유지하고, 나아가 사회 정의를 주장하는 데에는 대단한 지적 성실함이 요구된다. 정말이다. 나태한 사람, 자기에게 엄격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지식인을 자처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물론 개인마다 기질이나 성격 유형에 차이가 있게 마련이므로 지식인으로서 행동하는 방식에는 각각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적으로 성실하냐, 그렇지 못하냐는 역시 지식인이 지식인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척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성실함이 뒷받침되지 못할 때 그의 전문 지식과 학식, 심지어 훌륭한 인격마저도 정의를 주장하는 데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사실을 왜곡시키는 프리즘 역할을 할 수조차 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자신의 깨달음과 학문과 성실함과 양심이 서로 일치하지 못하고 어긋나 심각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자칭 타칭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추한 모습을 비교적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러니까 몸 따로 마음 따로 놀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거나 혹은 알았으면서도 무시하거나 혹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는 지적 파탄자들 말이다. 가령, 좌파 철학자들인 사르트르와 미셸 푸코를 연구하고 이들의 저서를 번역까지 한 학자가 국내 유수의 극우 잡지에 바로 그 사르트르와 푸코에 관한 글을 기고하는 행위;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기독교 신학자의 저서를 아름답게 번역한 언론인이 냉전 지향적인 데다 지독히 수구적이까지 한 자신의 재직 신문사를 적극 옹호하고 심지어 시민 혁명으로 물러난 독재자 이승만을 열렬히 찬양하는 연재 기사를 쓰는 행위; 노암 촘스키를 존경하고 그에 관한 연구서까지 저술한 학자가 수구 언론에 글을 기고하면서 그 수구 언론을 옹호하는 행위; 월북한 아버지를 둔 죄로 과거 국가와의 불화에 시달리던 소설가가 이제는 친일과 친군부 독재자 노선으로써 성장한 언론의 가호를 받으면서, 민주화된 시대와의 불화를 역설하는 행위; 로마인의 정치적, 종교적 톨레랑스(tolerance)를 미덕으로 찬양한 일본인 역사 저술가가 그 로마 제국이 보여 준 압제자로서의 패권주의에는 철저히 눈을 감은 채 자국 내에서도 "전범(戰犯) 출판사"로 지탄받는 극우 월간지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무력 응징이 당연하다는 글을 버젓이 기고하는 행위….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지식인이 한 사람의 인간, 곧 개인으로서 자신을 수양해 나가는 행위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유교 전통에서는 이러한 수양을 거쳐 도달하는 이상적 인간상을 흔히 '군자(君子)'라 칭하는데, 중국계 미국인 유학자 뚜 웨이밍이 묘사한 이 군자의 모습은 지금 내가 얘기하고 있는 지식인상과 상당히 근접하고 있어 흥미롭다. 이 자리에 뚜 웨이밍의 군자에 대한 진술을 그대로 옮겨 본다.

"유교에서 말하는 군자란 공적 지식인의 이상형(Ideal of Public Intellectual)입니다. 그는 정치적 문제 의식을 놓치지 않고(politically concerned), 사회에 앙가주망이 되어 있으며(socially engaged), 문화에 민감한 동시에 그것을 잘 아는(culturally sensitive and informed) 사람입니다. 또한 종교적으로 음악적이며(religiously musical), 생태주의적인 양식(ecologically conscientious)이 있습니다. 결국 군자는 철학자, 신부, 예언자, 힌두교의 교부(guru), 승려를 한데 합한 인간형입니다."

아름답고 시적인 진술 아닌가? 결국 지식인이 비판 작업의 대전제로 지녀야 할 지적 성실함이란 윤리적 성실, 나아가 종교적 숭고함의 차원으로까지도 승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이런 점에서 보자면, 어느 특정 사상이나 이념에 고착되어 거기에 안주한 채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지식인이 아니라, 그 사상이나 이념에 사로잡힌 일종의 광신도에 불과할 따름이다. 광신 내지 맹신이란 지적인 나태의 또 다른 표현이며, 감정의 과잉이 성실한 양심을 대체한 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이념적 스펙트럼의 극단에 각각 치우쳐 있는 극우와 극좌는 따라서 이념이라기보다는 유사 종교라고 봐야 하며, 이 유사 종교의 신도들은 하나같이 인종주의의 미신과 배타주의, 그리고 자기가 믿는 바와 다른 것은 모조리 거짓이라는 독단에 빠져 있다. 대한 민국의 경우엔 이 이념적 양극단 중에서 극우 집단이 우위를 점하고 있으므로 극우에 대해서만 잠깐 언급해 보자. 이들은 이념적으로 극우일 뿐 아니라, 이에 더하여 한반도에 냉전 체제를 지속시키기 위해 거의 발악에 가까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수구'로서의 특성을 갖는다. 사실상 이들은 이념적 극우라기보단 차라리 극우라는 껍질을 뒤집어 쓴 수구 집단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싶다. 왜냐 하면 민주화된 시민 사회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냉전 질서에 집착하는 치열한(?) 끈기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냉전 분위기를 지속시킴으로써 사회적 우위를 장악하려는 이들 수구 집단의 노력은, 자기들이 믿고 있는 '소위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해야만 한다는 집착과 함께 '자유 민주주의란 곧 반공주의'라는 실로 위대한 지적 나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의 질서에만 매달려 도무지 변화된 질서를 배우려 들지 않는 나태한 사람들은 적어도 대한 민국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극우가 될 수밖에 없다. 보수가 아닌 극우 말이다. 대한 민국의 극우는 그래서 지적으로 게으르다. 정말 게으르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여전히 반공주의와 굳건히 결합된 지독한 보수주의이다. 말이 좋아 '보수'이지, "한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언급을 상기한다면 이 보수는 극우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선거에 의해 한 차례 집권당이 바뀌었다고 해서 지난날의 지배 계급이었던 호전적 극우 집단이 종적을 감춘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우리 사회의 기존 극우적 멘탈리티가 일시에 다른 무엇으로 대체된 것도 아니다. 특히 언론이라는 형태로 집요하게 나의 몸 속으로 파고들어 각인되려 드는 이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극우 멘탈리티를 떨쳐내고 지속해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선 결코 정체되지 않아야 하고 또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전근대성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공자가 사서(四書) 중 하나인 <대학 大學>에 남겼다고 전해지는 다음의 친숙한 두 구절이 매우 절절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수신(修身)과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 이 두 구절을 조합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들고 이를 지식인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삼았다. 즉, '끝없이 나의 몸을 닦아 나날이 새롭고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  /2002년 5월


   2003년에 덧붙이는 말

보다시피 2002년의 후기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끝을 맺지 못한 채 이렇게 미완으로 남아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던 탓이다.

사실 나는 2002년 5월경, '웹진영화'에 복귀하기 위한 절차를 모색했던 적이 있다. 절필해야만 했던 내적 모순과 갈등이 거의 해소된 마당에 복귀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위의 후기는 바로 그 즈음에 써 내려가기 시작한 글이다. 그리고 미완의 형태로나마 현재 이러한 글을 쓰고 있다는 공개와 함께 pinhead의 복귀에 대한 '웹진영화' 크루들의 동의를 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크루 한 사람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했고, 이런 까닭으로 결국 pinhead의 복귀는 무산되었다. 자연히 후기의 작성 역시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이 지점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나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는 크루 한 사람조차 설득할 수 없는 글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겐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 이후 '웹진영화'는 내 지나간 과거의 일부로만 남게 되었다.

하긴 그 크루의 판단이 옳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절필 선언과 함께 pinhead와도 작별을 고하는 것이 순리였을 게다. 그러나 이름은 역시 소중한 것이다. 과거의 오명(汚名)이 미래에도 끝없이 나의 덜미를 붙잡는다면 그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고통도 없을 터. pinhead의 균열과 모순과 사망은 바로 그 pinhead의 봉합과 조화와 부활로밖에는 해소될 수 없는 것이다. 이름이 실존을 압도하고 마는 이 네트 상의 일견 무시무시해 뵈는 상황이란!

입에 묵직한 자물쇠라도 하나 채워 놓은 듯,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하지 못한 채 다시 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2003년이 되었다. 이제는 나도 이 문제를 마무리짓고 싶다. 언제까지 과거에 연연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 아닌가? 미완인 데다가 지금 다시 읽어 보니 몹시 부끄러워지기까지 하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여기에 2002년의 후기를 싣는 데엔 이러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작년의 이 후기에서 미처 풀어 놓지 못했던 얘기들은 앞으로 언제고 다른 장에서 다른 모습으로 선을 보일 날이 오리라.  /2003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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