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y
 on PHILOSOPHY <친구> 2002년 후기 - 1/3  
<친구> 2002년 후기 - 괴물에서 인간으로, 분열에서 통합으로

상수 감독이 만든 극영화 중에 <생활의 발견>이라는 것이 있다. 이 영화에는 극중 인물들의 입을 빌어 시종 반복되는 인상적인 대사가 하나 나온다.

"우리, 사람 되는 거 어렵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일면 하나의 권력과 또 다른 하나의 권력이 맞부닥침으로써 발생하는 긴장의 파열음 혹은 단말마의 연속일 수도 있다고 본다면, 홍상수가 이 대사에서 말하려던 '괴물'의 의미는 자못 분명해진다. 상술해 보기로 하자.

알게 모르게 민주주의 이념 체계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로선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났다'는 천명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각 개인이 개인으로서 갖는다는 이 천부적 평등성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상실할 때 곧바로 대립과 마찰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져 무심히 짓밟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나락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그 주체할 길 없이 펄펄 끓어 넘치는 권력 의지로써 상대의 권력 의지를 제압하려는 투쟁에 골몰하게 되고, 그 투쟁에서 어떻게든 이겨 상대를 지배하고 억누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을 것이 자명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한 지배-피지배, 주인-노예의 권력 관계는 사회 도처에서 그 형태를 달리 하며 또아리를 틀고 있다. 다만, 이제 구조적인 국가 폭력의 수렁에서 벗어나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개인주의에 입각한 시민 사회로의 진입 단계에 있다 보니 감히 원색적으로 실체를 드러내지 못한 채 그 양상이 더욱 은밀해지고 더욱 교묘해졌을 따름이다. 국가 폭력 시대의 공적 앵톨레랑스(intolerance)에 길들여진 나머지, 구조적 권력 의지와 사적 권력 의지가 그만 뒤섞여 혼재 상태에 있는 우리의 가련한 국민들은 이 밝은(?) 시민 사회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그 은밀함과 교묘함 뒤에서 여전히 상호 존중보다는 상호 파괴의 규칙을 준수하고 있는 중이고. 그러나 바로 이 은밀함과 교묘함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 의지를 각자가 원하는 수준만큼 충족시킬 수 없다.

법이 있지 않느냐고? 법으로 조정하면 되지 않느냐고? 법 제도는 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사회 통제와 보전이 목적인 법률의 개입은 오히려 불만의 강도만 높여 주는 역효과를 발휘할 뿐이어서 사람들의 허기와 보상 심리는 가파르게 누적되어 가기만 한다. 해소가 아닌 정체에서 빚어지는 좌절감이 사람들을 사람의 길이 아닌 괴물의 길로 향하게 만드는 첩경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자신의 권력 의지가 뿜어내는 원초적 욕구를 사회가 용납하는 수위로 조정하여 표출하는 데에 서툰 사람 혹은 성숙하지 못한 사람-알고 보면 이러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일 테지만-은 사실상 식칼의 용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철없는 아이와 같아서 결국엔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물론, 자기 몸뚱어리에마저 상해를 입히는 괴물로서의 습속을 큰 심적 저항 없이 익혀 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사적 차원에 더하여, 소위 동등한 개인간의 대립과 마찰로부터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사회적 계급성이 개인과 개인 사이의 균열을 더욱 심화시키고 나아가 메울 수 없는 간극을 형성함으로써, 이 균열과 간극의 구조적 모순을 자각하지 못한 사람을 모순 그 자체에 고착시키고 그로부터 헤어나는 단서의 제공 또한 철저히 거절하는 까닭에, 이 사람들은 정체된 모순덩어리로서 구제할 길 없는 괴물로 화하고 마는 것이다.

홍상수의 인간은 그래서 "사람한테 사람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말라"고 절규하다가 어느 새 사람 이하의 괴물로 돌변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기와 더불어 사람 이하가 되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그는 모순 그 자체이므로 괴물이 되어 버린 자신의 처참한 몰골을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다.

두가 너무 길었다. 홍상수의 그 '괴물'과 용법상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나 또한 나에게 내재해 있는 모순들을 조화롭게 봉합하지 못한 채 상당 기간 자해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사람이 아닌 괴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기나긴 괴물의 나날들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해 준 전환점이 바로 <웹진영화>에 실린 영화 <친구>에 대한 나의 글을 둘러싸고 인터넷 상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였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나는 <친구>가 나에게 남겨 놓은 부산물과 씨름하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보람이 있어 이제 실마리가 잡히면서 나에게도 반가운 서광이 찾아들고 있다. 어떤 철학자가 말하길 자기를 배려하는 행위는 글 쓰는 행위와 결합되어 있다고 했다. 마침내 괴물에서 인간으로, 분열에서 통합으로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그 1년이라는 지루하고 답답했던 과정을 돌이켜 보고 이를 통해 앞날의 이정표를 세운다는 심정으로 나는 이 글을 써 내려가기로 한다. 부디 끝을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지난 1년 동안 몇 차례 이러한 성격의 글쓰기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때마다 나는 매우 초조해졌는데, 그것은 이 글을 끝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떠한 글도 제대로 써낼 수 없을 것이라는 강박감이 나를 온통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친구> 이후 나는 우연히 계기가 주어져 휘갈기는 잡글 이외엔 도통 글다운 글을 써 보지 못했다. 뭔가 강력한 힘이 등 뒤에서 나의 팔을 낚아채고는 도무지 놓아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힘들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지만, 역시 네트를 떠도는 수많은 괴물들로부터 시달림을 당한 1년 전의 필화 사건에서 비롯된 여파가 크긴 컸던 모양이다. 지금 와서 따져 보건대, 전문 의학 용어로 말해 거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에 준하는 정신적 외상을 입은 결과로 나타난 일종의 노이로제 증상이었던 것 같다. 웬 허풍이냐고? 웬 엄살이냐고? 글쎄? 이에 대한 나의 솔직한 답은 이거다.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지금이야 담담하게 회고해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엔 상황이 정말 심각했다. 나의 글에 일정 정도 녹아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증오가 이와 맞먹거나 오히려 이를 훨씬 압도하는 무수한 증오들과 맞부딪치면서 네트가 주는 역기능에 의해 증폭되고 또 증폭되어 거꾸로 나에게 밀어닥쳤을 때 나로선 실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 증오의 격류 속에서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면서 서서히 심약해져버린 나는 결국 눈먼 증오심에 의해 자행된 폭력 앞에 굴복하고 말았으며, 그리하여 상처 입은 자존감에 분하고 원통하여 몇날 며칠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개인 정보와 사생활의 침해라는 꽤나 비열한 방법으로 나에게 가해진 협박과 위해는 견디기가 무척 힘든 것이었다. "공적인 앵톨레랑스의 광기가 고갈되면 사적인 앵톨레랑스가 시작된다. 그리고 공적인 처형이 끝나면 린치가 시작된다"는 한 저자의 증언이 개인적으로 그 때보다 더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던 상황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제는 그러한 폭력 자체에 맞서 대항하는 것이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절감한다. 말 꺼내기에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그래서 '빨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공적, 사적 앵톨레랑스의 무자비한 린치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다 희생당한 사람들은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나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어 주고 있다. 1년 전이라면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엄청난 변화다. 내가 '빨갱이'를 다 존경하다니!

후우~. 시도하는 족족 실패하던 이 글쓰기 작업이 지금 별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데는 사람의 고통엔 거의 천부적이랄 수 있는 은혜로운 치료약, 곧 망각의 도움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 필수적인 통과 의례를 극복할 수 있는 힘 내지 활력이 어느 틈엔가 생겨났다고 보는 편이 옳으리라. 1년여의 까다롭기 그지없었던 준비기를 끝마치고 나는 마침내 의례를 순탄하게 통과하고 있는 중에 있다. 기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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