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
 <아마겟돈 Armageddon> 잡기장 4/4  

4. 팍스 아메리카나? 미국을 위협할 적은 누구냐!

<아마겟돈>은 미국 영화다. 미국에서 미국인에 의해 미국인을 위해서 제작된 영화가 미국의 영광과 미국의 현실을 반영하게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한 당연함을 인정하길 거부하고 도리어 괘씸하기 짝이 없다며 비난을 퍼붓는 답답한 사람들이 우리나라엔 아직도 꽤 많이 남아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짓은 변방 국가 인민으로서의 열등감과 패배감과 졸렬함을 드러내는 행위 이외엔 아무 것도 아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냉전이 끝난 지금,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건 누가 뭐라든 엄연한 사실이다. 한때 득세했던 폴 케네디의 미국 사양론(斜陽論)도 이젠 옛말이 되어 버렸다. 1975년의 치욕적인 사이공 철수를 끝으로 마침내 그 집요한 팽창주의에 종지부를 찍고 몰락의 길로 접어든 것이라는 항간의 소문 역시 미국이 냉전의 최종 승리자로서 여전히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해 나가고 있음을 볼 때 결국 한낱 소문에 지나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 우리는 미국의 잠재력이 실로 그 영토 크기만큼이나 엄청난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간과해 버린 게 아닐는지…. <아마겟돈>은 냉전의 최종 승리자로서의 미국의 현(現)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영화다. 이는 <아마겟돈>과 똑같은 소재로 1979년, 곧 냉전 시대에 만들어졌던 미국의 재난 영화 <지구의 대참사 Meteor>와 비교해 보면 뚜렷이 드러난다.

<지구의 대참사>는 영화의 완성도만으로 평가해 보자면 형편없는 졸작이지만, 영화가 만들어졌던 그 당시의 시대상이 완연히 드러나고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그나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긴 하다. 이 영화가 제작되었던 해인 1979년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 주도로 미소(美蘇) 핵무기 감축 협상이 전개되는 등 미국과 소비에트간의 첨예한 대립이 어느 정도까지는 누그러지고 있던 시기였다. 1981년 호전적인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소 관계가 다시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 때까지 이러한 데탕트(detente) 분위기는 지속되었는데, <지구의 대참사>는 바로 이 1970년대 말의 시대 상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영화다. 즉, 이 영화는 냉전의 양대 세력인 미국과 소비에트가 전 지구적 재난을 계기로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협력하여 사이좋게 재난을 극복해 나아간다는 얘길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소간의 화해 무드는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던 다른 미국 영화들에서도 엿볼 수 있는 바, 예를 들어 1977년에 제작된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를 보면 영국과 소비에트와 미국의 첩보 기관이 서로 협력하여 공동의 적을 물리치고 있으며, 종국에 이르러 우리의 제임스 본드는 최대 적국인 소비에트의 미녀 첩보원과 사랑까지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제 냉전 시대는 끝났다. 로널드 레이건이 서슴지 않고 "악의 제국"이라 불렀던 공포의 소비에트는 미국과의 무한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붕괴됐으며, 소비에트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는 더 이상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패권을 장악한 1990년대의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힘겨루기를 할 수 있는 나라나 세력은 이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겟돈>에 그려지고 있는 미국은 바로 이러한 유일의 초강대국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파멸로 몰고 갈 소행성이 지구로 돌진해 오고 있는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도 다른 나라들은 그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으며, 오로지 미국과 미국민만이 지구를 위기에서 구출할 유일한 기술력과 행동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때 대등한 위치에서 미국을 위협했던 소비에트도, 한때 대등한 위치에서 미국과 전쟁까지 벌였던 일본도, 한때 미국 독립의 은인이었던 프랑스도 모두모두 미국 NASA 주도의 지구 구출 계획에 미미한 도움 밖에는 줄 수 없는 입장이다. 어디까지나 주연은 미국과 미국민이며, 나머지는 전부 개똥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특히나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영화가 철저하게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린 러시아의 퇴락한 모습이다. 이미 재작년에 만들어진 영화 <에어 포스 원>에서 미국 대통령의 도움 없이는 일순간도 버틸 수 없는 무력한 국가로 몰락해 버린 러시아는 <아마겟돈>에 이르면 아예 미국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한심한 나라로까지 격하돼 버린다. <아마겟돈>에 등장하는 러시아의 우주 정거장을 보라. 예산 부족으로 수리도 못 받은 채 거의 고철 수준으로 방치돼 있던 이 우주 정거장은 미국의 스페이스 셔틀에 연료를 공급하는 중간 기지 역할을 해 주겠답시고 나섰다가 오히려 스페이스 셔틀을 파괴할 뻔한 위기까지 몰고 가면서 어처구니없이 자폭해 버린다. 게다가 이 고물 우주 정거장에 탑승하고 있던 러시아의 우주 비행사를 보라. 그는 역시 예산 부족으로 자신을 데려갈 우주선이 오지 않아 18개월째 지구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 큰 우주 정거장에 홀로 방치돼 있는 처량한 신세다. 그나마 그가 이 고물 우주 정거장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도움 덕분이었다. 우주 정거장을 탈출한 이후의 이 러시아 우주 비행사의 행적을 한번 상기해 보라. 그는 러시아인으로서의 자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채 시종일관 미국에 의지하여 연명해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에 기대지 않고는 그는 아무 것도 아니다. 황량한 우주 공간에서 도대체 자기 혼자 뭘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제 그는 소비에트가 낳은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Yurii Gagarin)의 영광을 이어받은 수퍼 엘리트가 아닌 것이다. 비록 자기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가 러시아의 '영웅'이라고 떠벌리고는 있지만, 그는 그저 미국의 진정한 영웅들 앞에서 재롱이나 떠는 정신 나간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미국 영화니까 '진정한' 영웅은 당연히 러시아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다). 우주 공간에서 너무 오래 홀로 지냈던 나머지 살짝 맛이 가 버린 듯이 보이는 이 불쌍한 러시아인은 마치 고주망태 지경에 이른 옐친 러시아 대통령처럼 시종일관 혀 꼬부라진 소리로 기행(奇行)이나 일삼으면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조연일 뿐이다. 이러한 묘사야말로 냉전의 최종 승리자인 미국이 지금 러시아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 아닐까 싶다. 요컨대 미국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는 과거의 소비에트와는 달리 아무런 위협도 주지 못하는, 주변의 웃기는 -그래서 친근감은 주지만 별 볼일 없는 시시한- 친구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래도 러시아는 미국의 지구 구출 작전에 우연히 동참이라도 할 수 있었고, 또 어쨌든 지구를 구한 영웅 중의 한 사람을 배출할 수 있었으니까 영화상에서 그나마 상당한 대접을 받은 것이라 봐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엔 영화상에서 아예 수도 파리가 초토화돼 버리는 비운을 겪어야 하니까. 같은 운석이 떨어져도 미국 뉴욕은 그저 빌딩 몇 채에 흠집이나 나는 정도에서 끝나는 반면, 프랑스 파리는 개선문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몽땅 결딴나 버린다. 그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미국은 일등 국가이고, 프랑스는 미국보다 못한 이등 국가이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실제 국력차라는 게 영화상에서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의 규모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것인가? 여하간 자존심 강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프랑스인들이 보면 상당히 기분나쁠 대목임에 틀림없다.


5.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vs. 스티브 부세미. 그 결과는?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고 해서 과거 냉전 시대를 지배했던 그 무시무시한 핵의 공포마저 자동적으로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마겟돈>은 아무래도 '그렇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강력한 영도력에 힘입어 핵무기는 확실하게 통제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 미국민에 대한 핵의 위협이란 현실적으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핵의 공포 따윈 그만 잊어라!??'

<아마겟돈>은 다른 영화에서도 광인이나 나사 풀린 인물로 곧잘 등장하여 관객들을 웃긴 배우 스티브 부세미를 동원하여 냉전의 산물 일체를 마음껏 조롱하고 무시해 버린다. 핵무기의 대량 파괴 능력과 대량 살상 능력으로 인해 파생된 냉전 시대의 광기와 부조리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심각한 회의(懷疑) 따윈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무참히 짓밟혀 버린다. 부세미가 핵폭탄 위에 올라타더니 난데없이 카우보이 흉내를 내던 모습을 상기하라.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냉전이 한창이던 1964년에 만들어진 이 흑백 영화에 깔려 있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냉전에 대한 격렬한 풍자 정신은 1990년대에 이르러 이 영화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부세미의 우스꽝스런 행동 하나로 인해 순식간에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풍자 정신이 거세된 광기는 그저 광기 그 자체에 머물 뿐이라는 것. 광기 그 자체만으론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결코 근원적인 고통의 산물이라 할 수 없는 부세미의 광기, 오로지 배우 부세미의 영화 경력에 의지할 뿐인 얄팍한 광기는 그래서 부세미가 활주로/지구/땅/현실에 발을 딛는 순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과연 인류의 생존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까지 깊은 고뇌의 씨앗을 뿌려 주었던 그 가공(可恐)할 핵이 한낱 가벼운 놀림거리, 유흥거리가 되어도 상관없을 만큼 우리는 속 편한 세상에 던져져 있는 것일까?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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