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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Friend> 1/5  
<친구> - 지역 할거주의의 득세인가, 민주주의의 종말인가?

감독 & 각본: 곽경택 | 출연: 유오성, 장동건, 서태화, 정운택, 김보경
러닝 타임: 117분 | 제작: 시네라인 ll | 제작국: ROK (2001년)

0. 영남이라는 지형도 안에서의 부산의 위치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서두를 핑계 삼아 영화와는 상관 없는 잡소리를 제법 늘어놓으려 한다. 잡소리 읽기 싫은 분이나 성질 급한 분은 이 장(章)을 그냥 건너뛰어도 된다. 단, 글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엔 다소 지장이 생길 수도 있음을 미리 얘기해 두는 바이다.

지금의 경상 남북도를 흔히 영남(嶺南) 지방이라고 부른다. '조령(鳥嶺)의 남쪽'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같은 영남 지방이라 해도 경상 북도(경북)와 경상 남도(경남)는 각각의 언어나 문화나 그 주민의 기질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령 언어의 경우, 서울 사람들이 경상도 방언을 들으면 다 그게 그것처럼 들리겠지만, 경북과 경남의 방언은 액센트나 인토네이션에 서로 엄연한 차이가 있다. 어미(語尾) 변화에도 각각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경북에서 사용되는 "했는교?" "했니껴?" 따위는 경남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경남 사람들에게는 이런 어미 변화가 오히려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주 1]

문화적ㆍ기질적 차이는 표면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언어적 차이보다 커서 같은 영남 지방 안이라도 지역에 따른 차별 의식이 암암리에 존재한다. 일례로, 안동이나 대구 같은 경북 내륙 지방 사람들은 대체로 경남 사람들을 '쌍놈'이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 <친구>의 무대인 부산에 대한 경멸감은 그 중에서도 제법 심한 편인데, '제2의 도시'니 한때 유일했던 '직할시'니 하는 영예(?)에 어울리지 않게 과거부터 문화적으로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부산을 그들은 '무지막지한 뱃놈들이 사는 쌍것들의 동네'라며 질시(疾視)한다. 지금도 안동 김씨와 안동 권씨 양반 문화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안동의 경우엔 그 질시의 수위가 한층 심하다. 하긴… 뱃사람들에게 거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터무니없는 미신도 잘 받아들인다. 이러한 이미지가 항구와 중첩될 시엔 꼭 안동 사람이 아니더라도 항구 도시에 대한 내륙인의 인식이 안 좋아지는 건 당연하다.

재미있는 것은, 부산 사람들 역시 다른 항구 도시 사람들에 대해 뚜렷한 차별 의식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같은 경남 지방 안에서는 특히 마산에 대해 경멸감 비슷한 걸 품고 있어서 마산 사람들을 '순 쌍놈' 취급 하기도 한다. 언어 영역에서 마산 사투리가 부산 사투리에 비해 상당히 억센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부산 사람들은 마산 사람들의 말이 억세고 듣기 싫다며 때로 흉보곤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대개 해안 지방의 언어가 액센트나 인토네이션 면에서 주변 내륙 지방의 것에 비해 훨씬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항구 도시인 부산의 사람들이 역시 같은 해안의 항구 도시인 마산 사람들에게 갖는 일종의 우월 의식을 설명할 길이 없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중심인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로선 이해가 잘 안 갈 수도 있겠지만, 각 지방에도 중심과 주변부가 존재한다. 경남의 중심은 역시 부산이다. 부산 사람들이 마산 사람들에게 갖는 우월 의식은 이러한 중심으로서의 우월 의식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서울이라는 총체적/절대적 중심을 늘 의식하면서 갖는 그러한 상대성 말이다.

서울은 그것이 갖는 절대성이라는 맥락에서 서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지방에 대해 우월감을 느낄 아무런 필요가 없다. 서울은 늘 서울 그 자체이므로 다른 지방을 의식할 이유조차 없는 것이다. 도시라는 것의 철저한 의존성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절대성은 터무니없는 것일 수도 있겠고, 또 비뚤어진 자아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서는 우위에 놓고 비교할 대상이 없는 절대적 중심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건강함'을 의미한다. 경쟁 상대나 비교 우위의 상대가 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컴플렉스를 형성하며, 그 컴플렉스는 나아가 병적인 열등감마저 배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면에서 마산에 대한 부산의 상대적 우월 의식은 별로 건강한 것이 못 된다. 필자가 보기에 이는 절대적 중심인 서울에 대한 열등감과 -어떤 식으로든- 연계된 하나의 심리적 보상 기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중심의 위치에서 보자면, 부산의 마산에 대한 우월 의식은 그저 주변부의 한낱 도토리 키 재기 놀음에 불과한 것이다. 글쎄… 이는 모든 주변부가 갖는 한계이자 운명 같은 것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서울이라 해서 처지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서울 또한 전 지구적 규모에서 보면 일개 주변부이자 변두리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이 시대상이 내리꽂는 중압감에 압도된 채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말 것인가? 아모르 파티!! Amor fati!!


1. 지역 할거주의의 득세인가, 민주주의의 종말인가?

<친구>가 떴다! 필자가 <친구>에 대해서 굳이 글을 쓰는 것은 오로지 이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다른 이유가 없다. 어째서 이 촌티 폴폴 나는 영화가 그토록 뜰 수 있었는가? 개봉 스크린 수가 역대 최고여서? 비수기라 근래 관객을 끌어당길 만한 영화가 없었기에? 향수를 자극하는 싸나이들의 진한 우정과 의리를 그리고 있어서? 사회에 때아닌 복고 바람이 불어서? 장동건과 유오성을 투톱으로 내세운 스타 이미지 때문에? 탄탄한 시나리오와 작품성 때문에? 그냥 한국 영화라 편하고 친밀감이 느껴져서? 뭘까? 나도 모른다!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지 <친구>가 떴다는 그 사실 하나에서 비롯된다. 즉, <친구>가 뜰 수 있었던 사회 현상 이면의 풍경을 이해하기 위한 지식인으로서의 '의무'라는 것. 요컨대 결코 <친구> 자체에 대한 흥미로 인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나저나 전이(transference)의 감정이 전혀 일지 않는 영화에 대한 글을 순전히 의무감(그것도 자발적인)으로 쓴다는 것은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영화 자체에 대해 특별히 할 얘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큰 무리 없이 만들어졌다는 것 이외엔 그저 그런 것이 별 재미도 안 느껴졌으니까. 그냥 다 식은 숭늉 한 사발 들이키다 만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따라서 필자의 이 글은 <친구>라는 영화를 향한 권력 의지의 이글거리는 발로가 아니라, 별 생각 없이 심드렁한 기분으로 갈기는 레토릭(rhetoric) 정도일 따름이다. 자발적 의무감으로 쓰는 글이라 해서 꼭 심각하고 진지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무책임한 게 아니냐고? 그럼 안 읽으면 될 일 아닌가? 누가 언제 읽어 달라고 애원이라도 했는가? 허허~

레토릭? 그래… 레토릭. 그럼 어떤 식의 레토릭으로 <친구>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사회 현상의 이면에 접근해 들어가야 할까?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요즘 널리 퍼진 정신 분석학 담론을 이용하여 접근해 들어가는 방법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무의식을 파헤침으로써 그들이 유발한 사회 현상을 무의식 차원에서 발본 색원하는 방식으로 파악한다? 과연 그럴듯하지 않은가? 무의식. 이 신비한 단어가 발산하는 엄청난 마력 앞에서 사람들은 기가 팍 죽어 버린다. 크어~ 위대한 의학적 발견에 대한 감격. 그러나 무의식이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에 다름 아닌 것을. 뭐 까짓 거, 코걸이면 어떻고 또 귀걸이면 어떤가? 어차피 레토릭인걸. 유태인 정신 분석가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자신의 유명한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1941)를 통해 당대의 멀쩡한 독일인들을 단지 그들이 히틀러와 나치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모조리 무의식적인 불구자로 만들어 놓은 것도 정신 분석학이라는 강력한 레토릭 덕분이었고 보면, 필자도 이 예를 응용하여 넓게는 한국 사람들을, 좁게는 부산 사람들을 아예 무의식적인 똥멍청이로 뒤바꿔 놓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프롬은 존경받는 분석가이자 학자였던 반면, 필자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까짓 거, 뭐 어떤가? 그 유명한 프롬도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게 받은 박해와 수모에 대해 품었을 법한 억울함과 분노를 학문이라는 껍데기로 적당히 포장하여 독일인 전체에게 투사(projection)하는 엄청난 짓(?)을 서슴지 않았는데! 이에 사람들은 욕을 하기는커녕 승화(sublimation)의 산물이자 예리한 통찰이라며 온갖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물며 무명인 필자가 이와 비슷한 짓을 저지른다 해서 누가 감히 필자를 비난할 수 있으리요? 자기에겐 아무 죄도 없다고 확신하는 맛 간 인간만 나에게 돌을 던져라. 돌을 던지는 즉시 달려가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개 패듯 패 줄 것을 아울러 약속하노라. [주 2]

자! 이제 그 잘난 레토릭이란 걸 빙자해서 투사를 한번 시작해 볼까? 아주 노골적으로 투사를 해 보자. 프롬처럼 자신이 투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숨긴 채 치사하게 빙빙 돌려 얘기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원색적으로 드러낼 것 다 드러내 가면서 한번 이야기해 보자. 그 편이 차라리 솔직하지 않은가? 본인들 스스로 솔직하고 싸나이답다고 착각하는 부산 '놤자'들도 아마 이러한 필자의 솔직함만큼은 이해해 주겠지. 뭐… 이해해 주지 않아도 필자로선 아무 상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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