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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경택 감독은 부산이라는 지역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고 있다.[주
9] 따라서 그의 사고나 시각은 부산이라는 지역주의의 협소한 틀을 벗어날 수 없다. 뉴욕 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한 '국제적' 인물로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경향인데, 달리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만큼 부산이라는 지역이 지역으로서 갖는 문화적 배타성과 수구성의 강력함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가 만들었던 영화들 중 자전적 요소가 가장 덜했던 <닥터 K>(1998)가 오히려 실패한 이유도
간접적으로는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즉, 지역이라는 강력한 자장(磁場)을 벗어나고자 한 감독의 노력이 어설프고 세련되지 못한 국제화(?)와 맞물려 개선이 아닌 개악으로 귀결되고 말았다는 것. 사실
<닥터 K>는 상당히 촌스러운 영화다. '메디컬 미스터리'라는 홍보 문구가 무색하게 미스터리 영화가 갖는 팽팽한 긴장감은 그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다. 반대로, 무당과 현대 의사를 억지로 무리하게 결합시키려
한 덕분에 3류 코미디를 볼 때에나 나옴직한 쓴웃음만 계속됐다. 무엇보다도 감독의 이러한 미신적 발상-주술을 현대 의술보다 우위에 놓으려는 발상이야말로 그의 지역주의적이고 후진적인 사고를 말없이 보여
주는 또 다른 예가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부산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곽경택 감독의 '<친구> 이후'가 걱정스럽다. 걱정? 웬 걱정?
<친구>는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감독 자신의 과거사를 근간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과거사라는 것이 혹 감독의 일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점이다. <닥터 K> 이후 "일체의 모든 활동을 접고" <친구>의 시나리오를 쓰는 데에만 "2년여의 기간이 소요됐다"는 말은 이러한 추측이 단지 추측으로
끝날 일이 아님을 넌지시 암시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제 불과 35년의 삶을 살아온 감독에게 극화할 만한 과거 기억으로서 남아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지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차후 그는 <친구>
이상의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그는, 필자가 판단하기로는, 늘 자신의 부산에서의 과거 기억을 작품에 투영하는, 그것도 강하게 투영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친구>에 그의
과거사를 일시에 쏟아 부은 이후 곽 감독은 도대체 어떤 얘기를 할 것인가? 앞으로는 기왕 극화한 기억들을 변주만 하면서 살아갈 생각인가? 아니면 새로운 그 무엇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일까? 필자로선 후자이기를
바랄 뿐이지만…. 그리고 이는 필자가 필자와 동갑내기인 감독에게 갖출 수 있는 최대의 예의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곽 감독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제 부산이라는 지역성을 극복할 방안을 연구해 보라는 것이다. 언제까지 자신의 과거사와 부산이라는 지역에만 집착하고, 아니 고착돼 있을
생각인가? 고착도 정도가 지나치면 프로이트 영감님 말씀대로 노이로제로 발전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어른으로의 성숙과는 거리가 먼 유아적 퇴행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친구>는
좀 과장하여 말하자면 감독 자신의 유아적 퇴행을 암시하는 하나의 징후(sign)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징후가 스크린을 타고 전국으로 마치 유행병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는 데에 사회적 심각성(?)이 있다. 부산
놤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전 국민이 이 영화에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관절 무얼 말해 주고 있는가? 그것은 이 나라가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시사하는 하나의
징표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전근대성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증폭된 사회적 퇴행 현상으로 인해 한층 조장되고 한층 악화되었다. 설사 곽경택 개인의 퇴행이 다음 작품으로 극복되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할지라도
그로 인하여 이번 대한민국의 전반적 퇴행까지 아울러 이전 수준으로 되돌려질 것 같지는 않다.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 행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사회적 반향이 클수록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그냥 내질러놓고 나 몰라라 하는 건 자신이 예술가를 빙자한 사기꾼임을 만방에 천명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장선우 감독은 매사가 이런 식이다. 필자가 장선우를 사기꾼으로 규정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곽경택 감독은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친구>는 미성숙한 대한민국 시민 사회의 현주소를 알려 주는 영화이다. 시민(市民)이 무엇인가? 시민은 단순히 '도시의
주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민은 바로 부르주아(bourgeois)의 역어(譯語)이다. '부르주아'라 하면 띨띨한 속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저 산업 자본가나 유산자, 나아가 속물 따위밖에 연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맹렬한 증오감에 사로잡혀 치를 떨어 댈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의미에서의 부르주아란 빨갱이들의 타도 대상이 아니라 바로 빨갱이들이 존경하고 감사해야 할 위대한 선배님들이시다. 부르주아지(bourgeoisie),
곧 시민 계급이야말로 시민 혁명의 주체로서 신분제 절대주의 왕정 체제를 무너뜨리고 평등을 기초로 한 근대 시민 사회의 문을 연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난 세기에 볼 수 있었던
빨갱이들의 무수한 난동 사건 역시 역사에 전혀 기록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 자본주의란 애초부터 시민 혁명이 성공을 거둔 곳에서만 생겨나 발전한 것이고, 빨갱이는 그렇게 해서 정착된 자본주의가 낳은
사생아라 볼 수 있으니까. 빨갱이들의 난동은 그저 도도한 자본주의 체제의 흐름 가운데에 던져진 조약돌로 인해 발생한 자그마한 파문과도 같은 것에 불과했다. 그나마 빨갱이들의 난동이 먹혀들어간 곳이라곤
하나같이 자생적 시민 혁명이 발생하지 않은 미개한 지역들뿐이었다. 자율적 개인으로서의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준동하는 것들이 바로 빨갱이인 것이다. 어디 빨갱이뿐이겠는가만….
시민 사회는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이는 시민 사회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개인이 중심이 된다는
의미에서 시민 사회의 근간은 개인주의이며, 지역주의나 국가주의가 아니다! 물론 공산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시민 사회는 오히려 이들 지역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공산주의를 배격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시민 사회의 개인 곧 시민은 집단이나 국가 같은 공동체에 선행하는 '나'가 '나'라는 자각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에 일차적 책임을 지는 데카르트적 주체이며, 그러한 나-개인-독립 주체-자율적 존재-시민들이
모여 이루어진 사회가 다름 아닌 시민 사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 사회의 각 개인은 모두 자유롭고 평등할 수밖에 없으며, 자연히 어떠한 권력으로부터의 지배도 거부하는 민주주의가 시민 사회의 정치 체제로
자리를 굳힐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시민이 곧 그 체제의 주인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유롭고 평등한 각 개인은 스스로 자기 생활을 향상시킬 권리와 책임이 있으므로 개인들 간에 자유로운 경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며, 그 경쟁은 경제적으로는 시장 경제라는 자본주의 체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거니와 시민 사회의 핵심은 개인으로서의 시민이며, 무엇보다도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될 때 시민 사회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니까 결국 시민 사회의 개인주의는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자유주의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와 결합되어
오늘날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형성되었다.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무슨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 같은 내용이 되어 버렸는데, 이는 근대화란 책임 있는 주체로서의 자율적 개인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근대화의 완성이란 시민 사회의 성숙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은 이게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주체가 어쩌구 시민이 어쩌구 개인의 인권이 어쩌구 자율적 존재 사이의 합리적 의사 소통이 어쩌구 하는
것보다 추상적인 탁상 공론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얼핏 듣기에 몽상가의 공상적 이론과도 다를 게 없는 시민과 시민 사회의 개념,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전근대적인 사고에 온통
쩔어 있는 인간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고, 또 체화(體化)까지 시킨다는 것은 보통 힘든 과제가 아니다. 즉, 근대화를 위해선 물질적 결핍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지적 무지까지 극복해야 한다는 이중의 장애가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 철학자는 말했다. "민주 정치는 모든 정부 형태 가운데 가장 어려운 형태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지성의 가장 광범위한 확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라고.
교육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으되 지성은 단순성의 만연으로 인해 계속 저지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근대화는 과연 성공리에 수행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필자가 보기에 대한민국은 근대화는커녕 지금도
여전히 전근대적 단계에 머물러 있는 미개한 나라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껍데기만 자유 민주주의 체제일 뿐, 그 멘탈리티는 중앙 집권 왕정 관료 체제였던 조선 왕조의 그것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에는 진정한 시민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이름만 대통령인 왕과 그의 충성스런 신하들, 그리고 그들의 주먹구구식 통치 하에서 끊임없이 고생하고 있는 어엿븐
백셩들이 존재할 따름이다. 민주 투사도 대통령 자리에만 등극(그렇다. 등.극.)했다 하면 곧바로 왕 노릇 하려 드는 나라. 대한'민국'이라고? 웃기지 마라! 대한'왕국'이 맞다.
대한왕국. 이 왕국은 학벌과 동문, 그리고 출신지라는 새로운 신분제 질서가 단단히 뿌리내린 전근대 국가이다. 이 곳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평등한 개인들 사이의 자유 경쟁이
철저히 무시된다. 자유는 방종으로 배척되고,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로 매도당한다. 전통 문화와 공동체 정신의 계승이라는 미명 하에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의 가치만 강요된다. 자율적 개인은 없고 타율적
우리만이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어엿븐 백셩들은 부산 사람들처럼 우물 안 개구리 모양 이 사실을 모른다. 알려고 들지도 않는다. 이따금 못 참겠으면 홧김에 시민 혁명을 빙자한 민란을 일으켜 보기도 하지만
흐지부지… 그냥 그걸로 끝이다. 여기에다 어설픈 민주화 운동 덕분에 가진 자와 잘난 자에 대한 적개심이 만민 평등주의와 뒤섞여 만연한 결과, 잘난 놈이든 못난 놈이든 할 것 없이 모든 백셩의 의식 속에는
나보다 더 가진 놈 끌어내려 나만큼 못살게 만들고, 나보다 더 잘난 놈 끌어내려 나만큼 못나게 만드는 것이 곧 평등이라는 저질 하향 평등주의가 단단히 와 박혀 버렸다. 즉, 사촌이 땅을 사면 '무조건' 배가
아프다는 식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선 공정한 자유 경쟁이 아예 불가능하다. 자기 개발과 자기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그저 온갖 못된 심보로 무장한 짐승들이 벌이는 그야말로 이전투구 식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전근대적 참상만 끊임없이 전개될 따름이다. 대한왕국의 백셩들은 그래서 잘난 놈이든 못난 놈이든 도무지 주제 파악을 못 한다. 잘난 놈은 물론 지가 잘났다고 거들먹거리고, 못난 놈은
오히려 지가 더 잘났다고 큰소리 치기 바쁘다. 이해와 타협과 관용과 겸손의 미덕이 설 땅을 잃은 곳. 아! 우리 나라 좋은 나라, 위대한 대한왕국이여!! 앞서 필자는 부산의 전근대성을 강도 높게 비난했으나 사실
부산만 욕할 것도 못 된다. 결국 부산은 대한왕국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다만 부산이 다른 지역보다 그 정도가 꽤 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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