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영화 보기
 <서편제 Seopyeonje>의 철학적 이해 2/4  

난 계속해서 질문을 했는데, 욕심이 앞선 나머지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하고 좀 횡설수설했던 것 같다. 아무튼, 내 질문의 골자는 한 마디로 말해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철학이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는 "느낌"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답해 주었다. 이어 그는 놀랍게도 아무런 수식어구도 없이 "그냥 만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의 계속되는 '의미 찾기'식 질문과 횡설수설에 그는 좀 짜증이 났던 것 같다. 차분하던 말투가 서서히 약간 공격적인 직설 투로 바뀌고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었다. 그는 이어 "영화란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이를 통해 각자 '느끼면 되는 것'이지 '논리로 영화를 분석하려 드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고 빠르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로 등을 벽에 기대면서 고개를 약간 숙이고 팔짱을 끼었다. 거부의 메시지가 담긴 바디 랭귀지인 것이 분명했다. 난 순간 할 말을 잃고 잠시 멍청하게 서 있다가 "알겠습니다…."라는 한 마디만 남긴 채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극장 안의 어두움으로 들어서면서 내 머리 속엔 문득 장-폴 사르트르의 저서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지식인은 고독하다. 아무도 그에게 어떤 역할을 위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왜 떠올랐을까?

임권택 감독과의 짧은 대화가 있은 후 나는 <서편제>보다는 인간 임권택 감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과연 그는 어떠한 인생길을 걸어온 사람일까? 그가 걸어온 삶과 영화계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알게 되면서 나는 그가 나와의 대화에서 보였던 마지막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임 감독은 말하자면 중세 유럽의 도제와도 같은 식으로 영화를 배워 온 인물이다. 실제로 임 감독은, "나는 영화에 대한 직업 의식이나 영화광의 소년 시절을 보낼 수 없던 세대에 속합니다. 영화를 많이 볼 수도 없었고, 영화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영화 일을 하게 된 것은 예술이 아니라 배고픔 때문이었습니다."[김용옥(1989), <새츈향뎐>, 서울: 통나무, 33쪽에서 재인용]라는 고백을 하고 있다. 영화계에서의 첫출발이 이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영화는 하나의 체험이었고 '느낀 대로'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유창한 논리적 설명이나 문법은 필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지기를 바라는 그에게, 이른바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나 같은 식의 '논리적 질문'은 단연코 '우문'(그는 실제로 나에게 나 같은 식의 질문은 '愚問'이라고 말했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임 감독 같은 장인(匠人)에게는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과학적인 설계도 따위는 별 필요가 없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는 할지라도 과연 임 감독의 이른바 '느낌의 철학'은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 영화 나아가 예술을 이해하는 데에 이른바 '논리'나 '분석'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고 관객은 그저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가 말하는 '느낀다는 것'이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에 대한 이러한 임 감독의 견해 자체가 하나의 또 다른 '논리'라고는 볼 수 없겠는가?

임권택 감독의 가장 큰 오류는 그가 '논리'라는 것에 대해 통속적인 이원론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사고 체계 안에서 논리로 표현되는 이성(理性) 즉 오성이라는 것은, 느낌으로 표현되는 소위 감성(感性)과는 철저히 대립되는 성질의 것일 수밖에 없다. 이성과 감성을 각각 존재론적 실체로 구분한 서구식의 이러한 단순 이원론은 자연스럽게 철학과 예술을 별개의 것으로 보게 하는 오류에 빠지도록 만든다. 철학을 일종의 지식 체계, 그리고 논리적인 사고틀에 의해서만 운용되는 빡빡한 것으로 봄으로써 결과적으로 철학을 예술로부터 배제시켜 감성 지상주의적 예술관을 낳게 한다. 그러나 철학이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물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일 뿐이다. 그 인식의 문제에 이성과 감성의 구분이란 있을 수 없다. 흔히들 이러한 이원론을 확립한 주범으로 오해하고 있는 임마누엘 칸트도 조심스럽게 오성과 감성의 '개념적 구분'만을 시도할 뿐이지 결코 '예술의 비철학화'를 주장한 적은 없다. 예술이든 철학이든 그 보여 주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결국엔 인식의 문제로 귀착하는 것이다. 따라서 임 감독이 협소하게 정의 내리고 있는 '느낌'이라는 것은 오히려 이성과 감성의 구분이 없는 통합체로서의 '느낌'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야 옳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2장에서 김용옥의 氣철학과 관련지어 좀더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순전히 느낌 내지 감각에 의해 좌우된다는 후진적 사고 방식이 아직도 사회 통념화되어 있고 보면, 사실 임 감독의 사고 체계를 크게 나무랄 것도 못 된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이 '느낌'을 계속해서 이렇듯 이원화하여 협소하게 정의 내리고 있는 한, 그의 세계적인 거장으로의 도약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술의 철학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난 2000년인 지금에 와서도 임권택 감독이 소위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장의 영화들에는 철학적인 자기 성찰의 요소가 자연스레 깃들여 있다. 임 감독의 영화들에선 작위적인 철학만이 발견될 뿐이다.)

잘 만든 영화에는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가 숨어있게 마련이다. '훈련된' 관객은 그 의도를 읽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완전한 해독이 불가능한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관객의 영화 보기가 관객 개개인에 따른 엄연한 주관적 심미 체험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란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각자 느끼면 되는 것"이란 말에 수긍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영화를 읽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논리' 자체마저도 부정해 버리는 우를 범했다. 여하간 그럼에도 임 감독의 발언을 최대한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하나의 영화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에는 이런저런 여러 관점이 있게 마련이다라는 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서편제>를 보면서 나만의 심미 체험을 했다. 그 체험에 근거하여 나는 다음 2장에서 <서편제>를 김용옥의 판소리론과 몸각(mom feeling)론의 입장에서 읽어보고자 한다. 김용옥 철학에 대한 나의 부정확한 이해가 오히려 <서편제>를 오독할 위험을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하는 이유는 내가 너무도 명쾌하게 <서편제>와 김용옥 철학과의 상관성을 '느꼈기'(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느낌의 문제는 내가 직접 임권택 감독에게 물어 확인한 것-임 감독은 김용옥의 저서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굳이 또 변명을 덧붙이자면, 나의 이러한 시도가 하나의 시도로서는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상은 기의 무형태와 유형태의 통합이다" [김용옥(1989), <새츈향뎐>, 서울: 통나무, 머릿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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