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y
 on CINEMA <웹진영화>의 지난 1년을 돌아본다 - 1/4  
<웹진영화>의 지난 1년을 돌아본다

이 글은 1998년 8월, 웹진영화 창간 1주년 기념호인 제10호의 FILM FATAL 섹션에 위와 동일한 제목으로 실었던 것이다. 2000/07/24.

<웹진영화>가 네트(NET)를 부유(浮游)하기 시작한 시점은 1997년 7월 7일이다. 벌써 1년이 흐른 것이다. 창간 멤버로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본인의 감회야 어떻든 창간한 지 기껏 1년 밖에 안 된 웹진에 대한 회고의 글을 쓴다는 자체가 보는 사람에 따라선 상당히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네트를 기반으로 하는 웹진은 전통적인 종이 인쇄 매체와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 웹진은 작년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태동이 시작된 새로운 매체이다. 이는 웹진, 나아가 네트라는 것이 50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종이 인쇄 매체와는 달리, 보기에 따라선 무한한 가능성을 갖는 실험성 짙은 매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웹진의 존재 기반인 인터넷의 장래가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한국의 현 상황은 더더욱 그러하다.

사실 우리는 작년 6월, 창간 작업을 서두르면서도 한국에서의 인터넷 열기라는 것이 순전히 거품에 불과하다는 점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IMF 경제 위기가 닥쳐오자마자 졸지에 사실로 입증된 이 인터넷 거품 현상은 그래서 작년에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수많은 웹진들을 자멸하게 만들거나 개점 휴업 상태에 빠뜨려 버렸다. 네트나 웹진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터넷에 대한 환상에 빠져, 혹은 돈독이 올라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무작정 웹진 시장에 뛰어든 결과였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우리의 지난 1년을 회고한다는 것은, 그간의 숱한 시행착오들과 위기를 상기하고 반성한다는 사적(私的) 의미를 담고 있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앞으로 속속 생겨날 한국의 후발 웹진들, 특히 우리와 맥을 같이 할 이른바 '비상업성 독립 웹진'들에게 선발 주자로서 하나의 예를 제시해 보인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회고를 통해 후발 독립 웹진들이 최소한 우리와 같은 시행착오는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는 기대 같은 것. 아울러 좀더 욕심을 부려 보자면, 우리의 회고를 출발점으로 아직도 여전히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는 국내의 인터넷과 네트-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논의가 조금이나마 활성화되길 또한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1. 도메인명 확보 007 작전 혹은 'SCREEN.CO.KR'은 영원히…

웹진 창간에 있어 가장 먼저 난관에 부딪치게 되는 문제가 바로 도메인명 확보와 사업자 등록이다. 이건 정말이지 무정부적이어야 할 네트의 생리에 역행하는 아주 짜증나는 방해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사업자 등록은 그럴 듯한 도메인명을 확보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비상업성 독립 웹진을 지향하는 우리가 이윤을 추구하는 'CO.KR'이라는 도메인명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뜻을 헤아리고 음지에서 우리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신 고마운 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 분은 자신의 이름이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므로 이 글에서 그 분이 누구인지 얘기할 생각은 없다(네트가 익명성의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겠지만). 사실상 <웹진영화>의 발행인이라 할 수 있는 그 분은 자신의 사업자 등록증으로 창간된 웹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서 그 어느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 분이 다른 웹진의 발행인들처럼 간섭하고 통제하는 행위 따윌 일체 하지 않는 것은 아마 그의 자유 분방한 기질 탓도 있겠지만, 영화에 관한 한 우리 못지않은 애정을 갖고 계신 데다가 네트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 또한 우리와 유사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분이 우리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그 분께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우리 독자적으로 <웹진영화>를 꾸려 나갈 뿐이다. 그런 우리를 그 분은 묵묵히 지켜보실 따름이고. 이런 점에서 우린 처음부터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행운은 그냥 여기서 끝나 버리지 않았다. 'SCREEN.CO.KR'이라는 좋은 도메인명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행운이 작용한 결과였다. 실은 우리보다 하루 앞서 동일한 도메인명을 신청한 한 사업자가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SCREEN.CO.KR'은 그의 차지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우연찮게도 그의 서버 회사 컴퓨터가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업무가 마비되어 신청 접수가 하루 늦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 사이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가 같은 이름의 도메인을 신청하였고, 간발의 차로 희비가 엇갈리면서 결국 'SCREEN.CO.KR'은 우리 차지가 되고 말았다. 도메인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인식하고 있었을 우리의 서버 회사측 담당자가 우리보다 더 기뻐하면서 이 낭보(朗報)를 전해 왔던 작년의 그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무슨 비밀 첩보 작전의 대성공이라도 브리핑하듯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던 그의 메일 내용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리에게 낭패를 당한 그 사업자가 이러한 전후 사정을 알고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사업자로서는 참으로 통탄할 만한 순간이었으리라. 우리는 우리대로 이 뜻밖의 행운에 크게 고무되어 창간 작업에 박차를 가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만약 이런 행운이 없었다면 우리는 다른 이름을 물색하느라 고심해야 했을 것이고, 이 세상에 지금과 같은 모습의 'SCREEN.CO.KR'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존재는 이름/NOMINA에 의해 좌우된다는 철학적 주장도 있고 보면 이름은 참으로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심지어 이름 그 자체가 곧 존재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있을 정도니까. 비록 IMF 상황 때문에 국내의 인터넷 거품이 많이 사그라졌다고는 하나 좋은 도메인명을 확보한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외우기 쉽고 인지도 높은 영어 단어를 자기네 도메인명으로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외국의 경우 그 치열함이 가위 상상을 초월할 만한 수준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별 어려움 없이 '영화'를 의미하는 가장 대중적인 용어 중 하나인 'SCREEN'을 도메인명으로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수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달리 생각해 보면 그만큼 인터넷-네트에 대한 국내의 전반적인 인식 정도가 수준 이하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볼 수도 있겠다.

3장에서 우리가 우리의 도메인명을 'SCREEN'으로 정하게 된 이유를 잠깐 언급하게는 되겠지만, 'SCREEN'과 관련하여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한 가지 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는 월간지인 <스크린>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순수 웹진이라는 사실이다. 꽤 많은 우리의 독자들이 <웹진영화>를 그 도메인명만 보고서 월간 <스크린>의 홈페이지쯤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이러한 오해와는 상관없이 <웹진영화>는 그 자체로써 자기 충족적인 비상업성 독립 웹진이라는 점을 인식해 주었으면 한다. [2000년 현재, 월간 <스크린>의 웹 버전은 www.escreen.co.kr이라는 도메인으로 네트에 부유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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