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y
 on CINEMA <웹진영화>의 지난 1년을 돌아본다 - 3/4  

3. 아이/I.와 <웹진영화> 혹은 누구를 위하여 <웹진영화>는 만들어지는가?

<웹진영화>의 1년을 회고할 때 아이라는 인간에 대한 언급을 빠뜨린다면 반쪽짜리 회고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만큼 아이라는 인간이 <웹진영화>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웹진영화>의 발기인도 그이며, 창간을 위해 사람들을 긁어모은 것도 그이고, 웹진 제작의 의의와 매력을 역설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웹진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 것도 그이고, <웹진영화>의 기본 색조를 결정한 것도 다 그니까.

나와 아이와의 첫 만남은 역시 RL이 아닌 NET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PC 통신 천리안의 영화 동호회 'SCREEN'을 통해서였다. 우리는 둘 다 그 동호회의 회원이었다. 아이는 당시 그 동호회의 맡아 놓은 트러블메이커(좋게 얘기하자면 개혁주의자)였고, 그래서 비록 온라인 상이었다고는 해도 그에 대한 나의 인상은 당연히 좋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와 친숙해지게 된 것도 그와 나 사이에 벌어졌던 사소한 온라인 언쟁 때문이었다. 그는 PC 통신의 일개 동호회에 대한 애정이 너무 지나쳤던 나머지 통신 동호회를 늘 동호회 이상의 그 무엇으로 발전시켜 보고 싶어했다. 이를 나는, 그의 영화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영화 동호회라는 구체적인 조직으로 전이되었던 탓이라고 추측하는데, 불행히도 그의 과격하고 독선적인 성향으로 인해 그의 주장은 대다수 동호회원들에게 전혀 먹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동호회는 그저 동호회일 뿐 동호회로서의 한계를 쉽게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천리안에는 영화에 대한 공식 동호회가 오로지 'SCREEN' 하나 뿐이었고, 'SCREEN'의 동의 없이는 다른 영화 동호회가 생길 수 없었다. 원천적인 봉쇄인 셈이다. 천리안엔 영화와 관련한 모임이 많이 있지만 지금도 공식 동호회는 오로지 'SCREEN' 하나 뿐이다. 물론 하나의 통신에 굳이 여러 개의 영화 동호회가 있을 필요는 없다. 문제는 'SCREEN'이 과연 천리안을 대표하는 영화 동호회로서의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아무튼 회원이 적게는 200여 명, 많게는 400여 명에 지나지 않는 폐쇄적인 소규모 동호회가 천리안 전체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영화 관련 동호회로서의 지위를 누린다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것이다. 아이가 <웹진영화>의 창간에 그토록 정성을 쏟았던 것은 'SCREEN' 체제에 대한 반발심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게 사실이겠지만, 그보다는 'SCREEN'으로는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것을 <웹진영화>로써 대신하고자 함에 있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사실 우리 웹진의 많은 부분이 애초 아이가 'SCREEN'을 통해 실현해 보고자 한 것들이다.

본의 아니게 천리안의 영화 동호회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말았는데, 그럼에도 우리 구성원의 대부분이 'SCREEN'의 회원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창간 발기인인 아이부터가 'SCREEN'의 회원이었고, 애당초 아이와 뜻을 같이 한 'SCREEN' 회원들이 모여 만든 웹진이 바로 <영화>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는 'SCREEN'을 넘어선 새로운 'SCREEN'을 만들어 보자는 의미에서 우리 웹진의 도메인명까지 'SCREEN.CO.KR'로 등록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얼마 전 우리의 창간 멤버 중 한 사람이 덜컥 'SCREEN'의 시삽(sysop)까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SCREEN'의 하부 조직이거나 뒷마당인 것은 절대로 아니다. <웹진영화>는 'SCREEN'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별개의 조직이다. 그저 과거 'SCREEN'의 회원이었거나 현재 회원으로 있는 사람들이 구성원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뿐이다. 우리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결성된 집단이므로 통신 동호회와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음이 당연하다. 그래서 계간지 <리뷰>가 올해(1998년) 봄호에서 <웹진영화>를 가리켜 "개성적 편집이 눈길을 끄는 영화 동호회원들의 웹진"이라고 소개한 대목은 개인적으로 두고두고 불만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빗나간 소개로 인해 우리 웹진이 어떤 특정 영화 동호회의 홈페이지라는 식의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천리안 영화 동호회 'SCREEN'의 회원들이 우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 우리 웹진과 'SCREEN'과의 연관성은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우리 구성원들 중 'SCREEN' 동호회원인 사람들이 미련 없이 'SCREEN'을 탈퇴해 버리던가 혹은 'SCREEN' 동호회원이 아닌 사람들이 대거 영입되어 우리 중 'SCREEN' 동호회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대폭 감소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야기의 초점을 다시 아이에게로 맞춰 보기로 하자. 그는 자칭 '쌩양아치 파쇼 독재 편집장'이기를 자처할 만큼 독단적이고, 오만하고, 거칠고, 무식한 면이 있긴 하지만, 그에겐 일종의 이상주의자 혹은 로맨티스트로서의 일면이 있다.

이상주의자로서 그는 많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쓴다. 사람이 꿈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아이가 간직하고 있는 많은 꿈 중의 하나가 바로 영화를 실제로 만드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영화를 사랑하는데, 옆에서 내가 지켜보기에도 그는 '진짜' 영화를 사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영화를 사랑한다는 건, 특히나 대한 민국 같은 사회에선 정말 미친 짓이다. 나는 영화 그 자체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영화 그 자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떠받들 수 있는 위인도 못 된다. 그러자면 상당한 열정이 필요한데, 그런 열정을 영화에 쏟아 붓는다는 것이 나로선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나는 그저 영화의 여러 이미지들에 나 자신을 투영해 보길 즐길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마저도 영화 자체보다는 그 그림자들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소위 이원론자인 것이다. 네트의 생리에 비추어 본다면, 그리고 네트와 RL을 철저히 구분하고자 하는 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편이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 이 사람은 다르다. 그는 영화 그 자체를 글자 그대로 '사랑'한다. 만약 그가 다른 꿈들을 잠시 젖혀 놓고 자신의 사랑과 열정을 몽땅 영화에 쏟아 부을 수만 있다면 그 역시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길을 걸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프랑스가 아니고 대한 민국이며, 우리는 <카이에 뒤 시네마>가 아니고 <웹진영화>이며, 우리에게는 앙드레 바쟁 같은 존재도 없다. 한 마디로 아이는 가시밭길을 택한 것이다. 그런 그를 난 옆에서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다만 그가 <웹진영화>를 기반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할 따름이다.

그리고, 로맨티스트로서 그는 여자를 '진짜' 사랑한다. 나는 그저 멀찌감치 서서 여자라는 존재를 관조할 뿐이지만, 그는 여자를 정말로 사랑하고 그래서 여자라는 존재에 직접 돌진해 들어간다. 여자를 단순히 관조한다는 것과 실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차이다. 물론 그도 이상적인 여자의 이미지를 내면에 간직하고는 있다. <웹진영화>의 편집장답게 그 이미지는 다름 아닌 영화 속의 '오드리 헵번'이다. 나도 누구 못지 않게 오드리를 좋아하지만, 그건 다만 영화 속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반면, 아이는 그 이미지마저 넘어선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녀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는 오드리 주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수십 번도 더 보았다. 게다가 이 영화의 주제가 'Moon River'를 원어로 전부 달달 외워 부르기까지 한다(이 짓은 나도 즐겨 하는 행위이지만, 아이처럼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수십 번이나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온통 오드리와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에 빠져 있는 미치광이라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다. 아무튼…. 애석하게도 인생은 우리를 언제까지고 이미지의 환상 속에서 놀게 내버려 두지도 않으며, 또 언제까지고 돌진만 하다 끝나게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결국 아이 이 사람 역시 언젠가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어지럽혀져 있는 자신의 방바닥을 정리해 줄 반려자를 필요로 할 때가 올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그걸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다.

창간 1주년이 된 <웹진영화>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저돌적이고 용감한 아이 편집장의 추진력에 우리 구성원 각자의 꿈과 희망이 서서히 녹아들고 있는 것이다. <웹진영화>는 누구를 위하여 만들어지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변은 다음과 같다. 바로 우리 자신의 꿈과 희망을 위해서라는 것. 우리의 꿈과 희망의 조그마한 결정체가 바로 <웹진영화>다. <웹진영화>는 꿈과 희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는 이 정신을 끝까지 유지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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