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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 긁어모으기 혹은 우리는 어떻게 해서 근심하기를 멈추고 <웹진영화>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가?
웹진이 네트를 부유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냥 유령처럼 저절로 생겨나 떠도는 것은 분명 아니다. 웹진이 네트를 부유하게 되기까지에는 RL(Real Life)에 내던져진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살덩어리
인간들의 뼈빠지는 노동이 요구된다. 그렇다! 실제로 웹진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노가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들 보기엔 그저 문자와 기호와 그림과 사진과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모니터 상의
화면에 불과하지만 그 화면 하나하나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데는 종이 인쇄 매체 못지 않은 시간과 정력이 요구된다. 우리 같은 일개 독립 웹진으로선 구성원 개개인의 웹진에 대한 애정과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난 1년 간 한 호 한 호 업데이트 한다는 것이 우리로선 거의 전투나 다름없었다. 만약 작업에 대한 즐거움과 나름의 소명(召命) 의식을 갖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벌써 예전에 지쳐
나가떨어졌을 테고, <웹진영화>는 작년에 창간됐다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 간 숱한 국산 웹진들의 대열에 합류하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 과연 가능할까 싶었던 1년 버티기에 성공한 것은 우리 각자가 웹진 제작에 참여하기 이전부터 이미 웹진의 존재 기반인 네트 문화의 생리에 어느 정도 친숙해져 있었던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대부분은 PC 통신 경력이 최소한 3-4년씩은 되는 사람들이니까. 물론 이게 무슨 큰 자랑거리라고는 볼 수 없겠지만, 적어도 컴맹이나 생초보보다야 네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을 것이고 보면 결국 이 점이야말로 우리 다양한 인적 구성원의 유일한 공동 자산이며, 어찌 보면 가장 큰 자산인 셈이다.
사실 우리는 출발부터가 여러 상업성 웹진들과는 전혀 달랐다. 웹진 제작하겠답시고 무리해 가며 사무실 임대하고, 전화 설치하고, 가구와 컴퓨터 구입하고, 월급 주고, 원고료 주고 하느라 쓸데없는
돈 낭비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네트의 생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이 그저 무대뽀(?!) 정신으로 덤벼 든 많은 국산 웹진들이 이런 식의 낭비로 적자 더미에 올라앉아 결국 자멸의 길로 빠져들지 않았던가?
우리는 처음부터 PC 통신을 통해 만난 사이였기 때문에 이런 식의 시행착오를 거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구성원 각자가 이미 PC를 소유한 상태에서 네트를 생활화하고 있었던 데다가 또 네트라는 공간에 대한
나름의 마인드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RL에서의 사무실 임대니 컴퓨터 구입이니 하는 따위는 정말 무의미한 짓거리에 불과했다. 그저 각자가 자기 거주지에서 온라인을 통해 각개 전투식으로 웹진 제작에
참여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게다가 이윤을 남기겠다는 생각이 애당초 없는 비상업성 독립 웹진의 취지와 목적에 찬동하는 사람들만의 집단이었기 때문에 인건비 같은 건 아예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다. 오히려
각자의 주머니 돈 조금씩 갹출하는 형식으로 웹진을 꾸려 나갔으며 현재도 역시 그러하다. 이런 식의 운영은 만성적인 자금 부족 사태를 유발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이윤 추구가 아닌데다
웹진 운영이 생계 유지 수단도 아니므로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의 운영을 해 나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어쨌든 네트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려는 행위 자체를 경멸해 마지않는 바이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서로 다르듯 RL의 것과 NET의 것 역시 서로 다른 영역과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다.
지금까지 한껏 멋부려 가며 거창하게 자화자찬하는 얘기만 잔뜩 늘어놓은 감이 없지 않은데, 사실 우리의 시작은 알고 보면 정말 미미한 것이었다. 웹진을 제작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선 일종의
재미있는 놀이 내지 유희 내지 게임과도 같은 것이었다. 처음부터 무슨 엄청난 대의 명분과 치열한 문제 의식을 갖고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영화라는 것이 어차피 보고 즐기는 데에 일차적 존재 이유가
있는 하나의 놀이인 것과 마찬가지로 <웹진영화>의 출발 역시 재미와 놀이의 차원을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재미의 상실은 곧 <웹진영화>에 머물 이유를 상실하는 것과도 같다. 그간 몇몇
구성원들이 우리 곁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일시적이든 혹은 항구적이든 간에 웹진 제작에 더 이상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엄연히 외부와 나를 경계짓는 육체의 존재이기
때문에 RL에 쫓기고 허덕일 때 삶 속에서 아직은 이차적 의미 밖에 갖지 못하는 VR(Virtual Reality; 이 글에서는 네트-사이버스페이스와 영화 모두를 포함하는 의미로 쓰인다)이 RL을 위해 희생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이치다. 간단히 얘기해서 우리에게 있어 VR이란 결코 생계 유지의 수단도 공간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간단히 얘기하자면 우리는 순전히 영화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성격은 우리에게 넓은 운신의 폭과 아마추어로서의 여유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는 영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영화에 강박적으로 집착할 이유도 없고, 또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의 눈치를 봐 가며 영화에 대한 글이나 평을 쓸 필요도 없으니까. 욕? 하고 싶으면 꼴리는 대로 해 주면 되는 것이다. 칭찬? 하고 싶으면 역시 꼴리는 대로 해 주면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 웹진이 견지하는 듯이 보이는 입장들, 예를 들어 창간호에서 내걸었던 소위 "영평가는 죽었다!"라는 거창하고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선언 따위는 그 자체로써 우리에겐 재미있는
놀이에 불과할 따름이다. 즉, 우리는 영평가라는 구체적인 적을 상정해 놓고 이들과 싸우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 놀이를 즐기고 있다는 것! 당연하게도 우리에게 공식적인 노선이나 모토나
이즘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고 가정할 것 같으면 아마도 그건 "영화 보기는 놀이다!"가 되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영화 보기와 웹진 제작이 하나의 노동으로 전락해 버리고 우리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릴 경우, <웹진영화>는 그나마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명분도 모두모두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 때야말로 정녕 <웹진영화>가 네트의 바다에서 사라지는 날이 되리라.
이상의 입장들은 우리의 크나큰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외부적으로든 내부적으로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우선 첫째, 외부적으로는 그저 아마추어들이 객기로 한번 날뛰어 보는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줄 수가 있다. 그러나 <웹진영화> 만들기는 아마추어들의 단순한 객기도 아니며, 비록 '놀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길이 없는 한량들이 재미 삼아 해 보는 소일거리도 결코 아니다. '놀이'는 <웹진영화>가 택한 하나의 전략(전술이 아니다!)이라는 사실을
인식해 주기 바란다. 즉, <웹진영화>는 놀이터를 빙자한 전장(戰場)이라는 것. 그렇다면 적은? 우리를 제외한 모든 인간들과 이 밖에 다른 모든 것들. 우리 웹진의 독자들마저도 우리의 우군(友軍)은 아니다.
심지어 우리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독자들까지도 그가 우리와 행동을 같이 하지 않고 계속해서 독자/방관자로만 남아 있을 경우, 우리의 우군이 될 수는 없다. 우리 웹진은 '참여하는 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 웹진은 참여하는 자들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와 뜻과 행동을 같이 할 사람에겐 언제나 기꺼이 문호를 개방할 용의가 있다. 결국 우리 웹진에는 주인이나 소유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구성원 각자가 모두 주인이요, 소유주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네트의 '문화 게릴라'로서 영화 보기를 놀이가 아닌 공부로 전환시키려는 모든 '음모'에 맞서 투쟁할 것이다. 온갖 사악한
음모로 얼룩진 이 시대의 편집적인 조류 속에서 어차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권위 따위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도 믿지 말라! Trust no one!
그리고 둘째, 내부적으로는 구성원 각자가 개인의 삶이 힘들어질 경우 책임감을 상실하고 쉽사리 <웹진영화>와의 결별을 선언해 버릴 수 있다. 자발적인 참여가 전부이며 구속력이라곤 전혀 없는
우리 같은 비상업성 독립 웹진에서 한두 사람의 탈퇴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웹진의 와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 웹진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떠나려는
사람 붙잡지 않는 대신 돌아오겠다는 의사를 밝힐 경우엔 언제든 환영한다; PC 통신이나 인터넷 상의 논객들을 대상으로 한 포섭(?)을 통해 끊임없는 재수혈을 실시한다; 구성원 각자에게 우리 웹진의 존재 의미를
틈나는 대로 환기시킨다.> 어쨌든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인간 관계일 수밖에 없다. 네트를 부유하는 웹진이라 해서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웹진의 경우 계속되는 인간 관계의 위기
속에서도 조직이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창간 이래 편집장으로 활동해 온 아이/I. 님(이하 아이) 덕분이다. 사실상 <웹진영화>의 각 구성원들을 한데 묶는
원동력은 아이라는 한 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웹진영화>의 창간 발기인으로서 <웹진영화>라는 일종의 탈출구 혹은 대안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 사람이다. 카리스마와 인간적인 매력은 확실히
부족하지만, 엄청난 파쇼적 기질과 위대한 밀어붙이기 식 결단력으로써 그는 <웹진영화>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없는 <웹진영화>란 상상도 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부지불식중에 아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웹진영화>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에게는 순수한 구석도 있다.
이쯤에서 얘기의 초점을 아이라는 개인 한 사람에게 맞춰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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