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y
 on PHILOSOPHY 세계관으로서의 다위니즘에 관한 논고 - 1/10  
세계관으로서의 다위니즘에 관한 논고(論考)

1. 서론 - 연구의 목적과 범위, 그리고 한계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코페르니쿠스나 다윈과 같은 사람의 참된 공적은 진실한 이론을 발견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결실이 풍부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한 점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윈(Charles R. Darwin, 1809-1882)이나 그의 이론에 대한 평가로선 사실 꽤나 정직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오늘날의 진화학설이 애초 다윈이 제창한 이론 또는 메커니즘, 즉 다위니즘(Darwinism)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생물의 진화'라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서도 심심찮게 회의적인 반응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위니즘에 대한 평가는 과학적 사실 여부에 대한 과학 이론을 앞세운 공방전보다는 역사ㆍ철학ㆍ사회적 배경 등에 초점을 맞춘 일종의 보완 작업에 의해 각 개개인에 따른 가치 판단으로 결정짓는 편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는 발언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본다면 '진화'에 대한 수용 여부는 '과학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의해서보다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진화론은 단순한 과학 이론의 경지를 넘어선 일종의 세계관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사가(科學史家) 쿤(Thomas S. Kuhn, 1922-1996) 이래로 이러한 과학적 세계관을 흔히 '패러다임(paradigm)'이라 부르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앞서 언급한 대로, 진화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보다는 과학 이론으로서의 다위니즘이 어떻게 우리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될 수 있었는가를 보이는 데에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사회과학적인 경향을 띠게 될 것이며, 주로 역사적 접근 방식을 채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글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난 몇 년간 생각해 왔던 다위니즘에 대한 필자의 견해 중 일부를 정리해 본 데에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필자가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다위니즘에 대한 총체적인 글의 서설(序說)적 성격을 띠고 있는 셈이다 [2001년 註: 이 논문은 1990년에 출판된 것이다. 세월은 인생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는다. 2001년 현재, 필자는 이러한 계획을 포기한 지 오래다].

글의 전개상 논제의 축소는 필연적인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제2장에서는 세계관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와 함께 다위니즘이 세계관으로 수용되기까지의 과정을 역사적인 측면에서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겠다. 또한 이와 더불어 진보 사상과 다위니즘의 관계에 대해서도 역시 간단히 언급해 볼 생각이다. 제3장에서는 세계관으로서의 다위니즘이 각 방면에 수용, 흡수된 과정 중 특히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에 적용된 예를 통해 '세계관으로서의 다위니즘'이라는 관점을 보다 확실히 부각시켜 보겠다. 이와 함께 다위니즘이 이들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근거가 된 근본 원인에 대해서도 서술해 볼 생각인데, 필자는 이를 다윈 자신에게서 찾으려 한다. 이상과 함께 필자는 글의 입지를 보다 강화하기 위해 과학론적인 입장에서 '다위니즘은 진정 귀납주의의 소산인가?', '귀납주의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주장대로 과학의 객관성을 입증할 수 있는가?', 나아가 '과학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인가?'를 골자로 한 장을 제4장으로 추가하였다. 제4장을 통해 과학의 의미에 대한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상이 본 논고의 전개 범위이다.

이 글은 비록 '논고(論考)'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이긴 했지만, 일종의 에세이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므로 논리적인 비약이라든가 오류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 원래는 상세하게 붙여 놓았던 주(註)와 긴 참고문헌 목록을 모두 제외시켜야 했다는 점, 그리고 같은 이유로 제3장을 대폭 축소해야만 했던 점이다 [2001년 註: 웹 사이트에 올려진 이 문서 역시 1990년 출판 당시의 형태와 동일하다. 즉, 주와 참고문헌 목록 등을 원래의 형태로 복원하지 못한 것이다. 원본 자필 원고를 필자의 부주의로 분실한 까닭이다]. 이로 인해 전체 논고의 통일성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 미비하나마 이를 보완하기 위해 타저술에서 직접 따온 문장은 전부 인용 부호(" ")로 묶어 표시하였다.

끝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글에서 번번이 등장하게 될 '다위니즘'과 몇몇 용어들에 대한 정의이다. 우선 다위니즘은 일반적으로 진화론과 같은 뜻으로 통하기도 하며, 철학사(史)적 입장에선 '사회 다위니즘(Social Darwinism)'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에선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다위니즘이라 하면 다윈 자신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면서 제시한 다윈 자신의 생물학적 이론으로서의 의미로 국한시키기로 한다. 그 이외의 경우에는 모두 다른 용어로 표기하였다. 또한 종래에 쓰이던 일본식 용어 '자연도태'도 개정된 용어 '자연선택'으로 통일하였다. 영어 원어가 'Natural Selection'이고 보면 개정된 용어가 보다 타당한 용어라 여겨진다. 역시 일본식 용어인 '천변지이설(天變地異說)'도 개정된 '격변설(激變說)'로 통일하였다. 이 밖에 '패러다임'이라는 용어의 문제가 있다. 이를 과학사에 처음 도입한 쿤 자신이 여러 의미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쉽게 정의 내릴 성질의 것이 아니나, 일반적으로 '세계관(世界觀, world view)'과 동일한 의미로 쓰고자 한다. 즉, 쿤이 의미하는 개념보다 훨씬 광범위한 개념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의미로 쓰인 경우가 아닐 때에는 보충 설명이 붙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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