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y
 on PHILOSOPHY 세계관으로서의 다위니즘에 관한 논고 - 3/10  

3. 다위니즘이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적 배경이 된 원인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제국주의(帝國主義, Imperialism)와 공산주의(共産主義, Communism)라는 용어에 대한 최소한의 한계 설정은 필요하다고 판단되기에 먼저 이들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흔히 '제국주의 시대'라 하면 프로이센과 프랑스 간의 이른바 보불 전쟁이 발발한 1870년으로부터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체제가 붕괴되는 1914년까지의 약 40여 년 간을 가리키는 게 보통이다. 이 기간을 대개 '신(新) 제국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렇듯 '신'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까닭은 당연히 '구(舊)' 제국주의라고 부를 만한 시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구 제국주의 시대는 탐험과 발견의 시대인 15세기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선두로 18세기 중반 이후 절정에 달한 서구의 해외 식민지 확장기로서, 강력한 중상주의(重商主義, mercantilism) 정책에 힘입은 바 컸다. 경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구 제국주의가 쇠퇴하게 된 기점을 보통 1776년으로 본다. 그것은 이 해에 미합중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며, 그 이후 대영 제국의 해외 식민지가 현저히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등도 영국의 뒤를 이어 수많은 식민지를 상실하게 된다. 보다 의미심장한 것으로는, 바로 이 해에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이 간행됨으로써 중상주의 정책이 비판을 당하고, 자유 무역이 새로운 방법론으로 대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스미스의 자유주의가 일반적인 것이 되었고, 구 제국주의는 정당성을 잃게 되었다. 어쨌거나 유럽 국가들에 있어 해외 팽창의 관심도가 제일 낮았던 시기가 19세기 전반의 70여 년 동안이었다. 그러던 것이 1870년을 기점으로 유럽 제(諸)국가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폭발적인 해외 식민지 쟁탈기인 신 제국주의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이 신 제국주의 시대에 가장 큰 대제국을 건설한 국가는 영국이었다. "1900년에 이르러 대영 제국은 지구상의 전 육지의 1/5 이상으로 확장되었고, 전 세계 인구의 거의 1/4 가까이 포함하게 되었다." 이는 역사상으로도 가장 큰 제국이다.

이상의 내용은 사실상 홉슨(John A. Hobson, 1858-1940)이 경제적 시각에서 구축해 놓은 제국주의론의 기본 골격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오늘날의 제국주의론은 이 영국인에게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자들도 홉슨의 분석에 감명을 받았다. 홉슨과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적어도 19세기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연속 단계라는 입장이 확고하게 다져졌고, 오늘날엔 공공연한 사실로 굳어져 버렸다. 필자로서는 이러한 견해가 다위니즘을 분석하는 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구가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1870년을 기점으로 신ㆍ구 제국주의를 구분한 홉슨의 분석이 역사의 연속성을 깬다는 의미에서 반드시 좋은 도구로만은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분석이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제국주의라는 독점 자본주의 단계에 도달한다"는 레닌(Nikolai Lenin, 1870-1924) 식의 역사 법칙주의적 시각보다는 훨씬 유용하다고 여겨진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신 제국주의 시대가 진정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무자비한 식민지 쟁탈기였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에 대한 복잡한 논의와는 달리, 본 장에서 쓰이고 있는 '공산주의'라는 용어의 논의는 비교적 간단하다. 즉, 필자는 공산주의라는 용어로써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으로 이어지는 모든 마르크스주의를 표현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로부터 출발하여 러시아파 마르크스주의인 소위 '마르크스-레닌주의', 또 이를 계승함으로써 정통적ㆍ교조적(敎條的) 성격을 갖게 된 오늘날의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마르크스주의를 공산주의라는 용어로 포괄하여 나타내려는 것이다.


다위니즘이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라는 골격을 가지고 첫선을 보인 것은 1859년의 일이었다. 즉,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 The origin of species>[이 책의 정식 명칭은 다음과 같이 길고 복잡하다. <자연선택, 혹은 생존경쟁에 있어 혜택 받은 종족이 보존되는 것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을 발간한 해인 것이다. 그 이전에도 몇몇 인물들에 의해 생물 진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던 것은 사실이나, 다윈 이후에야 진화론이 다위니즘이란 공식 명칭 아래 구체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종의 기원>은 광대하고 무미건조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또 다윈의 예상과도 달리 발간 당일 초판 1,250부가 매진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러한 기현상은 출판사(史)의 또 하나의 미스터리라 할 만한 것으로, 단순히 당시 다윈의 과학자로서의 명성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여하간 이 책은 그 후 1872년에 제6판이 나오기까지 각 판마다 내용이 일부 수정되면서도 도합 12,000부가 넘게 팔렸다. 이에 따라 진화론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점점 높아져 갔으나, 진화론은 널리 보급되어가기만 했다. 쿤의 논리를 빌어 말하자면, '위기'와 '과학 혁명기'에서 '정상 과학(normal science)' 정착기로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다위니즘은 제국주의, 나아가 공산주의와 무슨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 우선 연대기적인 서술을 해 보면, <종의 기원> 초판이 발간된 해가 1859년, 마르크스(Karl H. Marx, 1818-1883)의 <자본론 Das Kapital> 제1권이 발간된 해가 1867년, 신 제국주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보는 해가 1870년이다. 이렇게 놓고 보았을 때 분명한 사실은, 제국주의나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다위니즘이 탄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로, 다위니즘이 제국주의나 공산주의의 이념적 배경으로 이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견해다. 물론 이러한 연도 설정에 의거한 설명 방식은 다분히 상징적인 것이기 때문에 세부적인 면에서 여러 잡다한 이론(異論)에 의해 비판당할 위험이 크다. 어쨌거나 다위니즘과 제국주의, 그리고 공산주의와의 연관성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다윈 자신과, <종의 기원> 집필 당시인 영국 산업혁명기의 우울한 배경 아래에서 문화 전반에 걸쳐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우선 오늘날 과학을 떠난 입장에서 다위니즘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가? 특히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다위니즘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우 크게 두 가지 견해로 집약된다고 보여진다. 첫째가 다위니즘이란 "궁극적으로 진보라는 신화의 생물학적 표현에 불과하다"는 견해이고, 둘째가 계급 투쟁과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해 준다는 견해이다. 이 중 두번째 견해는 첫번째 것의 아류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도 결국엔 이상적인 공산주의 유토피아 사회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진보라는 신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아이러니컬한 것은, 현대의 공산주의나 공산주의를 이론적 틀로 삼아 쓰여진 모든 책들이 진화론적인 유물론을 지지하고 인류의 진화를 찬양하고 있으며, 공산주의의 원조인 마르크스까지도 다위니즘의 자연선택설이 자기 이론에 대한 기초를 박물학적인 면에서 지지해 준다고 기뻐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의 첫번째 견해에 따르면 다위니즘이란 19세기 서구의 약육강식에 입각한 제국주의 침략의 가면적 이론인 것이다. 그것은 산업혁명에 의해 나타난 성과가 사람들로 하여금 진보 사상에 보다 확신을 갖게 했을 뿐만 아니라, 공장제 대량 생산에 따른 원료 공급지 및 시장 확대의 요구, 보다 중요한 것으로는 특히 영국의 경우 축적된 과잉 자본의 해외 투자에의 압력 등으로 인해 해외 식민지 개척이라는 제국주의 정책의 합리화가 필요했을 상황에서 적자생존을 주장하는 다위니즘이 등장하여 단시간 내에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위니즘이 제국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양극에 모두 이론적인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다위니즘은 양날을 가진 도끼인 셈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되었을까? 그 모든 원인의 씨앗은 다위니즘의 제창자인 다윈 자신 안에서 이미 발견되고 있다. 말하자면 다위니즘이란 시대 사조(思潮)나 상황의 생물학적 표출 형태에 불과하며, 다윈 역시 시대 사조를 극복하지 못한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데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진화학자들은 이런 사회과학적인 다위니즘 해석을 그리 달갑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즉, 그들은 사회 다위니즘(Social Darwinism)에 대한 대단한 불신감과 혐오감 때문에 과학으로서의 다위니즘이 다른 영역으로 확대 해석됨으로써 생길 부작용을 바라지 않고 있으며, 과학은 어디까지나 과학일 뿐으로 과학과 정치ㆍ사회와의 관계는 일단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윈 역시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러한 과학자들의 거의 본능적이라 할 수 있는 '과학의 독자적 기능'에 대한 신념, 즉 과학은 시대의 문화 사조로부터 받는 영향을 최대한 배제시켜야 한다는 견해는 과학이 논리적이요, 객관적이라는 토대가 있음으로 해서 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4장에서 다위니즘과 아울러 비판해 볼 생각이다. 본 3장에서는 다위니즘이 결코 시대 사조나 상황과 무관하게 발생한 것이 아님을 다윈 본인을 중심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이에 앞서 우리는 다위니즘에 대한 과학자들의 입장을 간단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고생물학자 굴드(Stephen J. Gould, 1942-  )는 <다윈 이후 Ever since Darwin>라는 자신의 한 저술에서 "진화는 무목적적이고, 비진보적이고, 유물론적이다"라는 함축된 표현으로써 다위니즘을 평하고 있다. 아마 진화를 옹호하는 상당수 과학자들이 이 굴드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필자가 주장해 왔던 '진보의 연장선상에서의 다위니즘'이라는 입장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굴드의 발언은 다윈이 확립한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에 국한시킨 평가에 불과할 뿐이며, 진화 전반에 대한 철학적 의미 부여용(用)으로는 부적당하다. 사실 다위니즘에 따르면, 격렬하고 열악하며 또한 서서히 변해가고 있기도 한 자연 환경 속에서 다양한 특성을 가진 개체들이 모여 살면서 집단을 형성하고, 이 집단 내에서 개체간의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물론 개체 스스로 자기가 치열한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고는 깨닫지 못하겠지만). 이러한 생물 중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개체(수동적 표현을 쓴다면 환경에 가장 적합한 특성을 지닌 개체), 즉 적자(適子)가 살아남아 종(種)을 형성하고 번성한다는 견해는 생물 진화가 분명 아무런 목적성이나 진보에 대한 자각 따위 없이 우연과 무작위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결론으로 기울어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게다가 전통적인 신의 섭리를 자연선택이라는 자연 현상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당연히 유물론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설정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단순한 우연의 산물로 보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용납하기 힘든 견해이기 때문에 줄리안 헉슬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진화를 정당화하고, 또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목적도 지향하는 바도 없던 진화가, 결국에는 목적을 추구할 수도 있고 진화론적 변화를 지향할 수도 있는 존재인 인간을 낳게 되었다."  진화란, 적어도 19세기 이후로 그 자체가 목적성과 진보성을 갖는 가치 체계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진화학자들은 진화에 대한 논쟁을 될 수 있는 대로 생물학 이론에만 국한시키기를 바란다. 이러한 한정된 영역 안에서라면 설사 다위니즘이라 할지라도 아무 거리낌 없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래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진화란 단순히 다위니즘이라는 형태의 생물학 이론, 또는 생물학의 영역, 나아가 과학의 영역 안에서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제2장에서 밝힌 것처럼 진화란 거대한 인간 사상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포괄적인 철학 체계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 눈치챈 독자도 있겠지만- 앞서 굴드가 언급한 진화의 '무목적적, 비진보적 성향'은 이제부터 논하려는 제국주의와 다위니즘과의 관계에서 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고, '유물론적 성향'은 공산주의와 다위니즘과의 관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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